[지디넷코리아]
AI 경쟁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모델과 반도체, 데이터센터를 떠올린다. 그러나 AI는 데이터를 모으고, 학습하고, 추론하고, 그 결과를 현장으로 되돌려 보내는 ‘흐름’으로 작동하며, 이 흐름의 모든 마디를 잇는 것이 통신 네트워크다.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Hyper AI 네트워크 전략’이 네트워크를 AI 시대의 고속도로이자 대동맥으로 규정한 것은 정확한 진단이다. 다만 2026년 AI 예산 9조9천억 원 가운데 이 전략의 이행 예산이 2900억 원 남짓이니, 민간 투자가 중심인 영역임을 감안해도 대동맥에 대한 투자치고는 가볍다. 더 중요한 것은 고속도로의 조건을 제대로 묻는 일이다. 길은 끊기지 않아야 하고, 막히지 않아야 하며, 누구에게도 닫히지 않아야 한다.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AI 시대에 오히려 커진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트래픽의 성격이 달라졌다. 학습은 데이터센터 사이에 막대한 데이터를 옮기고, 추론은 이용자 가까이에서 지연 없이 이루어져야 하며, AI 에이전트와 피지컬 AI는 현장에서 끊임없이 데이터를 올려보낸다.
둘째, 연산의 지리가 바뀌었다. 전력과 입지 문제로 AI 데이터센터는 수도권 밖으로, 나아가 국경 밖으로 분산되고 있고, 분산된 연산은 네트워크로 묶일 때에만 하나의 역량이 된다. 셋째, 의존의 깊이가 달라졌다. 행정·금융·의료·물류가 AI 위에서 돌아갈수록 통신 장애는 곧 사회 기능의 정지가 된다. 데이터센터 화재 한 번에 국가 전산망이 멈춘 경험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첫째 조건, 끊기지 않는 네트워크는 유선과 무선, 해저와 우주를 하나로 설계할 때 가능하다. ITU에 따르면, 해저케이블은 국제 데이터 트래픽의 99% 이상을 실어 나르는 사실상 유일한 대동맥이다. 그런데 우리 국제망은 케이블 수가 일본·싱가포르의 4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일부는 설계수명에 다가가며 육양국도 동남권 집중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위성통신은 도서·해상·재난 상황의 마지막 연결 경로다. 우리는 무궁화위성으로 30년 넘게 정지궤도 위성을 운용해 왔지만, 지연이 큰 정지궤도는 AI 시대의 양방향·실시간 이용에 한계가 있다. 그 공백을 메울 저궤도 위성은 스타링크 같은 외국 위성망에 의존하고 있고, 우리가 직접 띄워 운용하는 것은 아직 한 기도 없다.
종합적 접근이란 모든 수단을 똑같이 늘리자는 말이 아니라 한 경로의 취약점을 다른 경로가 메우도록 설계하자는 뜻이다. 발트해와 홍해, 대만 주변의 잇따른 절단 사고가 보여주듯 복원력은 얼마나 드물게 끊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되살리느냐로 정의된다.
육양국 다변화와 자체 수리 역량, 해저케이블을 국가 핵심 기반시설로 자리매김하는 법제 정비가 필요하고, 위성은 2035년 한국형 저궤도망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상용망을 쓰되 보안 게이트웨이와 암호키 같은 핵심 통제권은 우리가 쥐는 실질적 주권 모델로 가야 한다. 경로가 둘이어도 같은 관로를 지나고 같은 전원에 매여 있어 한 번의 사고로 함께 끊긴다면, 그것은 이중화가 아니다.
둘째 조건, 막히지 않는 네트워크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쓸 수 있다는 것은 다르다. AI 시대의 품질은 최고 내려받기 속도 한 숫자로 재단할 수 없다. 내려받기 못지않게 올려보내는 속도, 그리고 지연과 지연의 흔들림이 함께 체감 품질을 결정한다.
지금의 유무선망은 영상을 내려받아 보던 시대의 유산이라 내려받기에 치우친 비대칭 구조다. 그러나 AI는 사람이 음성과 영상을 올려 묻고, 로봇과 차량과 센서가 현장 데이터를 올려보내고, 에이전트가 서비스 사이를 오가며 수많은 짧은 요청을 주고받는 양방향의 세계다. 업링크가 막히면 가장 좋은 모델도 반쪽이 된다.
정부가 Hyper-AI 선도망 실증에서 업로드 속도와 지연 변동 폭을 핵심 검증 지표로 삼은 것은 옳은 방향이다. 이를 실증 현장을 넘어 전국의 품질평가와 주파수·투자 정책으로 넓혀, 평가의 잣대를 최고 다운로드 속도 하나에서 양방향 속도와 지연, 혼잡 시간대의 체감 품질로 넓혀야 한다. 5G 단독모드 전환과 6G, AI-RAN도 결국 이 양방향 품질을 어디서나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다.
AI 데이터센터의 세계 진출, 네트워크 없이는 ‘섬’이다
두 조건이 산업 쪽에서 만나는 지점이 AI 데이터센터(AIDC)의 세계 진출이다. 하나는 한국을 글로벌 연산 거점으로 만들어 AI 연산을 수출하는 길로, SK그룹이 2035년까지 15GW 규모의 AIDC를 짓겠다고 나선 것이 그 구상이다.
다른 하나는 데이터센터 자체를 패키지로 수출하는 길로, LG CNS가 자카르타에서 준공을 앞둔 AIDC는 설계·구축·운영에 냉각과 배터리까지 묶어 내보낸 첫 사례다. 그런데 두 길 모두 네트워크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 국제 회선이 가늘고 경로가 단조로운 데이터센터는 아무리 크게 지어도 글로벌 고객에게는 섬일 뿐이다. 글로벌 사업자는 전력 못지않게 해저케이블 경로의 다양성과 지연시간을 따진다.
해외에 지은 데이터센터도 현지 연결망, 본국과의 안전한 전용 경로, 현지 데이터 규제와 고객의 보안 요구를 함께 충족하는 설계가 있어야 경쟁력이 생긴다. AIDC 수출은 단순히 건물과 서버의 수출이 아니라 연산·네트워크·운영·신뢰를 묶은 체계의 수출이며, 그래서 국내 AIDC와 백본, 국제 해저망과 위성망은 하나의 국가 AI 인프라 계획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셋째 조건, 닫히지 않는 네트워크다. 우리는 2000년 시내전화와 공중전화를 보편적 역무로 지정했고, 2020년에는 세계 여덟 번째로, 그러나 가장 빠른 100Mbps 기준으로 초고속인터넷을 보편적 역무에 넣었다.
보편적 서비스의 관념은 이미 전화에서 데이터로 한 번 바뀌었고, AI 시대에는 한 번 더 바뀌어야 한다. 전화가 사람과 사람을 이었다면 AI 시대의 기본 통신은 사람과 지능을 잇는다. 그 최소 단위는 토큰, 곧 AI가 말과 글을 처리하고 과금하는 단위다. 정부가 전 국민에게 무료 범용 AI 챗봇과 공공 AI 에이전트를 제공하는 모두의 AI를 추진하고 있는 지금, 토큰을 받아올 데이터 통로가 비싸거나 느리거나 한쪽으로만 열려 있다면 그 약속은 완성되지 않는다.
교육·행정·돌봄·생계에 필요한 기본 토큰을 누구나 쓸 수 있게 하는 기본 데이터 네트워크 접근권을 보편적 역무의 새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유선 접속 보장에서 이동 중에도 쓸 수 있는 유무선 접근으로, 다운로드 속도에서 양방향 품질로, 접속 가능 여부에서 기본 AI 이용에 충분한 데이터 용량과 요금으로 기준을 옮기는 것이다. 지난 4월 이동통신 3사가 데이터 소진 뒤에도 400kbps의 데이터를 제공하기로 하고 정부가 이를 ‘기본적 통신권’이라 부른 것은 의미 있는 출발점이다.
AI G3는 가장 뛰어난 모델을 가지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생겨도 AI가 멈추지 않고, 어디서든 양방향으로 막힘없이 오가며, 어느 국민에게도 닫혀 있지 않은 나라에 주어질 것이다. 길이 끊기면 좋은 차도 달릴 수 없고, 길이 막히면 빠른 차도 소용이 없으며, 통행이 닫힌 길은 길이 아니다. AI 고속도로의 완성은 이 세 조건을 함께 묻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