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보호 위해 빈민가 차단?…케이프타운 3m 장벽 논란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장서연 인턴기자 =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관광객과 운전자 보호를 위해 고속도로를 따라 3m 높이의 장벽을 설치하는 계획이 추진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치안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보는 반면, 빈민가를 가리고 사회적 불평등을 은폐하려는 시도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 따르면 케이프타운 당국은 국제공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N2 고속도로를 따라 보안 장벽을 건설할 예정이다.

이 도로는 공항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주요 간선도로로, 강도와 차량 습격, 돌 던지기, 차량 유리 파손 등 각종 범죄가 반복되면서 현지에서는 ‘헬 런(Hell Run·지옥의 길)’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최근 몇 년간 관광객과 지역 주민들이 이 구간에서 범죄 피해를 입거나 목숨을 잃으면서 악명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조딘 힐-루이스 케이프타운 시장은 수십만 명의 관광객과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장벽 설치 계획을 발표했다. 해당 장벽은 인접한 빈민가와 고속도로를 물리적으로 분리해 운전자들이 공격당하는 상황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조명 개선과 보행 안전 시설 확충도 함께 추진될 예정이다.

하지만 비판론자들은 이 계획이 범죄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빈곤 지역을 사실상 봉쇄하고 도시의 심각한 불평등을 가리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일부 주민들은 이를 “현대판 베를린 장벽”이라고 표현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N2 고속도로 인근의 빈민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강력 범죄 발생률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공항 인근의 냥가 지역은 전국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살인율을 기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장벽 설치는 해당 지역의 강력 범죄를 줄이기 위한 광범위한 치안 대책의 일부로, 갱단 폭력 대응을 위해 군 병력 추가 배치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현지 경찰 관계자는 “벽을 세운다고 해서 조직범죄나 총기 범죄, 지역 사회 전반의 공공질서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야당인 ‘하나의 남아프리카 건설’당 역시 이 계획이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공간적 분리를 떠올리게 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도 영향 평가가 끝날 때까지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힐-루이스 시장은 해당 계획이 시민들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며 “범죄자들과의 화해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편 앞서 페루 리마에서도 빈민촌과 고급 주거지를 나누던 이른바 ‘수치의 벽(Wall of Shame)’이 2023년 약 40년 만에 철거된 바 있다. 당시에도 치안을 위한 방어라는 주장과 빈곤층에 대한 차별이라는 비판이 맞섰고, 결국 헌법재판소는 철거를 명령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hki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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