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디넷코리아]
화성 하늘에는 매일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구름이 있어 많은 과학자들이 그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ㄴ데 길이 약 1600㎞에 달하는 거대한 구름의 정체를 풀어줄 연구 결과가 공개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학 전문 매체 라이브사이언스는 화성 구름의 형성 원리를 밝혀낸 시뮬레이션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이 구름은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 그 어디에서도 관측된 적 없는 특이한 물리 현상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것이 연구의 골자다.
해당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게재됐다.
‘아르시아 몬스 긴 구름(Arsia Mons Elongated Cloud, 이하 AMEC)’이라 불리는 이 신비로운 수증기 구름은 화성 적도 남쪽에 위치한 높이 20㎞의 사화산 ‘아르시아 몬스’ 상공에 자주 나타난다. 2018년 유럽우주국(ESA)의 탐사선 ‘마스 익스프레스’에 의해 본격적으로 관측됐다.

AMEC는 태양 복사량이 증가해 강력한 표면 바람이 부는 화성의 봄•여름철이면 매일 아침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형성된 지 단 몇 시간 만에 완전히 증발해 사라진다. 이 구름은 최대로 길어질 때는 1600~1800㎞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는 화성 둘레의 12분의 1에 해당하며 영국 섬 전체 길이의 약 2배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화성은 거대한 먼지 폭풍이나 드물게 이산화탄소 구름이 나타나긴 하지만 대기 중 수증기가 극히 드물다. 따라서 지구처럼 솜사탕 같은 물 형태의 구름이 만들어지는 것은 매우 희귀하며, 특히 이렇게 거대한 수증기 구름이 형성되는 원인은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연구진은 마스 익스프레스의 관측 데이터를 기반으로 AMEC의 형성 과정을 구현하는 새로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연구 제1 저자인 호르헤 에르난데스-베르날은 “시뮬레이션에서 AMEC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교과서에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다소 특이한 물리 현상을 포함시켜야 했다”며 “이 물리 현상을 모델에 적용하자 우리가 실제로 관측했던 AMEC의 형태가 그대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AMEC는 강한 바람이 수증기를 높 산맥 위로 밀어 올리며 발생하는 ‘지형성 구름’이다. 지구에서도 남유럽 지브롤터 바위 상공에 형성되는 ‘레반터(Levanter)’ 구름처럼 유사한 지형성 구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화성 AMEC의 미시적 형성 과정은 지구의 구름과 완전히 다르다.
지구의 구름은 공기 중 먼지, 소금, 그을음 등 미세한 입자 표면에 수증기가 들러붙어 얼음 결정이 되는 ‘이종 핵생성(Heterogeneous nucleation)’ 과정을 거친다. 반면 화성은 대기 중에 먼지가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으로 구름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에르난데스-베르날 박사는 “AMEC의 경우 공기 중 응결 핵이 되는 ‘물질’ 없이 구름이 형성된다”며 “수증기가 중간 단계 없이 직접 얼음 구름 입자로 변하는데, 마치 물방울이 유리창 표면이 아닌 방 한가운데 공기 중에서 곧바로 맺히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를 응결 핵 없이 일어나는 ‘균일 핵생성(Homogeneous nucleation)’이라 부르며, 행성 대기 현상에서 실제로 관측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전까지 학계에서는 균일 핵생성이 지구 상층 대기나 금성 하늘에서 이론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보았으나, 지구 표면보다 약 10만 배나 높은 극단적인 상대습도가 필요해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여겼다. 물이 거의 없는 현대의 화성 대기에서 이 정도의 습도가 조성된다는 것 역시 선뜻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마스 익스프레스의 데이터는 해답을 제시했다. 에베레스트산보다 2배 이상 높은 아르시아 몬스의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강풍이 불어 올라가면서 거대한 대기 파동을 일으키고, 이 파동이 공기를 상층 대기로 쏘아 올린 것이다.
연구진의 계산 결과, 이 과정에서 공기 온도가 단 10분 만에 최대 30도까지 급강하했다. 이러한 급격한 냉각 현상은 공기 중의 수증기를 급속도로 동결시킬 뿐만 아니라, 파동 내부의 습도를 폭발적으로 높여 ‘균일 핵생성’이 일어날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을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구름을 형성한 수증기의 일부는 화성 대기 중에 존재하던 것이지만, 대부분은 두꺼운 서리로 덮인 아르시아 몬스 정상에서 공급됐을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다.

이번 시뮬레이션 성공은 화성 기상학 분야에서 매우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받는다. 에르난데스-베르날 박사는 “우리는 화성 대기에 대해 지구만큼 정교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AMEC 현상을 정밀하게 재현해 냈다”며 “이는 기상 모델링의 큰 성공”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번 연구는 물리학의 기본 원리는 같을지라도 다른 행성의 기상 시스템은 지구와 완전히 다르게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향후 태양계 탐사는 물론, 멀리 떨어진 외계 행성에서 생명체 존재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