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 속 오방색 비단에 담긴 작은 우주, ‘후령통’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내가 열반한 후에 부처의 형상을 조성하고 발자취를 그려 사람들이 보게 하면 모든 업을 소멸시킬 수 있다.”(조상경(造像經) 중)

불상 속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다섯 색 비단에 싸인 곡물과 향, 약재와 보석,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진언이 작은 용기에 담긴다. 용기 밖에는 하늘과 땅을 뜻하는 그림을 두르고, 신성한 주문으로 봉인한다.

이 용기가 불상과 불화에 생명력과 신성함을 불어넣는 후령통이다.

사찰의 불상과 불화의 겉모습만으로는 이 세계를 알기 어렵다. 대중이 부처의 형상을 조성하면서 품었던 정성과 바람은 그 안쪽에도 담긴다. 후령통과 복장물을 봉안하고 의식을 치르는 과정은 불상과 불화를 신앙의 대상으로 완성하는 일이다.

내년 3월 31일까지 강원 평창 월정사성보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전 ‘부처님 속 우주 후령통’은 이 보이지 않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 전시에는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과 목조문수보살좌상 후령통을 비롯해 국가지정문화유산 4건,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10건 등 성보 56건 174점이 한데 모였다.

이철호 월정사성보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에 대해 “그동안 불상과 불화 복장물에서는 조성 시기와 참여자, 발원 내용을 전하는 발원문에 관심이 집중됐다면 이번 전시는 복장물의 핵심인 후령통으로 시선을 옮긴다”며 “무엇을 넣고 어떻게 감싸 봉인했는지, 작은 성보들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납입 구조와 개별 유물로 조명한다”고 소개했다.

불복장 문화는 불상에 사리나 다라니를 넣는 데서 기원했다. 불교 전래 후 우리나라에서는 고유한 불복장 문화가 발전했고, 조선시대에는 불교 의식을 정리한 ‘조상경'(造像經)을 토대로 일정한 규범을 갖춘 복장의례가 이뤄졌다. 후령통은 여러 상징을 지닌 복장물을 담는 중심 성보였다.

불상 조성에 참여하는 일은 공덕을 쌓는 일이기도 했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대승불교 핵심 경전·’법화경'(法華經))’은 불상 조성에 기여하는 공덕을 설명하고, ‘화엄경소'(華嚴經疏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승려 원효대사가 ‘화엄경’을 풀이한 주석서)는 불상을 보수한 공덕을 전한다. 부처의 모습을 만들고 그 안을 정성스럽게 채우는 행위에는 신앙과 삶의 바람이 함께 담겼다.

이 학예연구사는 “대중들이 불상을 조성하고 복장물을 봉안한 이유는 불상 조성 또는 수리에 참여하면 큰 공덕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며 “묘법연화경에는 불상 조성에 기여하면 그 공덕이 매우 크다고 했고 화엄경소에는 불상을 보수하자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됐다는 기록이 있다”고 설명했다.

후령통 내부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사리를 담은 사리병과 오보병(五寶瓶)이다. 우주의 진리를 상징하는 오보병은 이름에 ‘병’이 들어가지만 주로 직물 보자기 형태로 만들어졌다. 동쪽은 청색, 서쪽은 백색, 남쪽은 적색, 북쪽은 흑색, 중앙은 황색으로, 다섯 방위를 비단의 색으로 구분했다.

오보병 안에는 보석과 곡물, 향과 약재, 산개와 번, 금강저 등 여러 복장물이 방위에 맞춰 들어간다. 이를 오색실로 하나로 묶고, 위아래에 원형 거울과 진언(眞言 부처와 보살의 서원이나 덕, 가르침을 간직한 비밀스러운 어구를 뜻하며, 범어(산스크리트어를 뜻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외우는 주문)를 더한다.

오색실을 후령통 위에 달린 대롱인 후혈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면서 내부 장엄을 완성한다.

이때 함께 넣는 ‘종자’는 한 글자와 소리에 부처의 지혜와 가르침을 담은 씨앗 같은 진언이다. 작은 씨앗에서 생명이 싹트듯 깨달음의 세계가 펼쳐지는 바탕이란 뜻을 지닌다.

땅·물·불·바람·허공을 상징하는 오륜종자, 다섯 부처를 뜻하는 진심종자 등은 후령통 안에 담긴 세계를 문자와 소리로 드러낸다.

우주를 담는 방식은 용기 밖에도 이어진다. 불화의 후령통에는 둥근 하늘을 상징하는 준제구자천원지도(准提九字天圓之圖)와 네모난 땅을 상징하는 열금강지방지도(列金剛地方之圖)를 함께 봉안하기도 한다. 하늘과 땅으로 후령통을 감싸 우주의 조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여덟 방향을 연꽃으로 형상화한 팔엽대홍련지도(八葉大紅蓮之圖)에는 불보살을 상징하는 주문을 적었다. 온 세계에 두루 퍼지는 지혜와 자비, 수행자가 이를 마음에 갖추도록 돕는다는 의미가 담겼다. 후령통 안팎에 놓인 직물과 그림, 문자는 각각의 자리에서 불교의 세계관을 구성한다.

마지막에는 네모난 비단인 황초폭자로 후령통을 감싼다. ‘조상경’은 황초폭자를 약 1척 5촌, 45㎝의 황색 비단으로 설명한다. 비단에는 네 방위를 상징하는 인도 고전어나 진언을 쓰고, 후령통을 감싼 뒤 봉인주를 둘러 ‘근봉(謹封)’이라 적어 장엄을 마친다.

봉인에도 순서와 의미가 있다. 부처의 가르침을 담은 법사리로서 보협주를 먼저 황초폭자 안에 넣고, 준제주로 세로 방향을, 법인주로 가로 방향을 봉인한다. 재앙을 없애고 복을 얻으며 죄업을 없애고 지혜를 더한다는 뜻의 주문들이 겹겹이 후령통을 감싼다.

이 학예연구사는 “이처럼 후령통은 단순한 유물 보관함이 아니라, 동양의 우주관과 불교의 교리, 그리고 불상을 조성하던 당대 대중의 염원이 결합된 ‘작은 우주’였다”고 말했다.

같은 후령통이라도 불상과 불화에서는 재료와 봉안 방식이 달라진다. 불상에는 주로 원통형 금속 용기를 사용하고, 내부에 복장물을 넣은 뒤 바닥판을 닫는다. 족자형 불화에는 원통형이나 사각형 종이 후령통을 비단주머니인 복장낭에 넣으며, 액자형 불화에는 그림 뒷면 나무 틀 사이에 봉안한다.

삼척 영은사 석가삼존도의 후령통은 네모난 종이 상자다. 겉면에는 ‘후령통’과 부처의 설법이 이뤄지는 ‘영산’을 한자로, 진언을 고대 인도 문자로 적었다. 내부에서는 오방색으로 물들인 사각기둥 형태의 오보병과 그 안에 봉안한 곡물, 직물, 진언 등이 확인됐다.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그림, 붉게 물들인 팔엽대홍련지도도 함께 봉안됐다.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의 후령통은 은으로 만들었다. 황초폭자를 비롯한 여러 색 직물로 감쌌고, 그 안에는 적색 보자기에 싸인 오보병과 사리병 등이 들어 있었다. 후령통 뚜껑에는 진심종자 진언을 수놓았다. 작은 용기의 안팎까지 장엄한 흔적이다.

이번 전시는 불상과 불화 조성의 종교적 배경에서 출발해 후령통의 내부와 외부를 살핀 뒤, 봉안을 통해 신앙의 대상으로 완성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아직 개봉되지 않은 상원사 영산전 제1존자의 후령통은 봉인이 풀리기 전 모습을 보여준다. 삼척 운흥사 목조아미타불좌상 복장물은 보존처리를 마치고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월정사성보박물관장 해운 스님은 “이번 전시는 그동안 닫혀있던 후령통을 열어 그 안에 간직되어 있던 복장물을 선보이고, 봉안의 각 과정에 사용된 성보들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라며 “작고 낯설게 느껴지는 성보 하나하나에 담긴 대중의 정성과 간절한 바람, 그리고 후령통 안에 고이 깃든 마음을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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