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디넷코리아]
꿀벌을 농약에 계속 노출했더니 여왕벌 몸에 쌓인 농약이 알로 넘어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평소에는 일벌이 농약을 걸러 여왕벌을 보호하지만, 농약 노출이 계속되자 이 방어선이 약해지면서 벌집의 다음 세대까지 농약에 노출됐다.
22일(현지시간) 사이언스데일리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UC데이비스) 연구진은 농약에 노출된 꿀벌 군집에서 화학물질이 일벌과 여왕벌, 알, 벌집 사이를 어떻게 이동하는지 추적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지난 7월 2일 온라인 공개됐다. UC데이비스를 비롯해 미국 로런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LLNL), 미 농무부 농업연구청(USDA-ARS) 연구진 등이 참여했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여왕벌을 농약으로부터 보호하는 일벌의 역할이다. 일벌은 여왕벌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유해물질을 걸러내 여왕벌의 농약 노출을 줄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이 과정을 관찰하기 위해 여왕벌 1마리와 일벌 60마리가 생활하는 소형 실험 군집인 ‘나노콜로니(nanocolony)’를 만들었다. 이후 꽃가루와 물 등을 공급하면서 먹이에 방사성 표지를 붙인 살충제 메틸파라티온(methyl parathion)을 넣었다.
방사성 표지를 이용해 극미량의 농약이 벌집 안에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추적한 결과, 실험 초기에는 일벌 방어 능력이 상당히 높았다.
첫날 일벌은 농약의 약 95%를 걸러내 벌집의 밀랍 등에 축적시켰다. 하지만 농약 노출이 계속되면서 여과 능력이 떨어져 10일째에는 이 비율이 86%로 낮아졌다.
일벌의 방어 능력이 약해지면서 여왕벌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왕벌 몸과 난소에 농약이 축적됐으며 일부 농약은 여왕벌이 낳은 알에서도 검출됐다.
연구진은 이를 ‘모계 배출(maternal offloading)’이라고 설명했다. 어미의 몸에 축적된 화학물질 일부가 알과 같은 생식 조직으로 이동하면서 체내 오염물질 부담을 줄이는 현상을 말한다. 연구진에 따르면 꿀벌에서 이 같은 농약 이동 현상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사샤 니클리시 UC데이비스 환경독성학과 부교수는 “여왕벌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이러한 화학물질을 알로 배출한다”며 “꿀벌에서 이런 현상이 확인된 적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실험에 사용한 농약 농도는 벌을 즉시 죽이는 수준보다 낮았으며 자연환경에서 접할 수 있는 범위로 설정됐다. 연구진은 LLNL의 생물학적 가속기 질량분석 기술인 ‘BioAMS’를 이용해 매우 적은 양의 농약까지 추적했다.
다만 농약이 알로 이동하는 현상을 여왕벌이 새끼를 희생하기 위해 내리는 의식적인 선택으로 볼 수는 없다. 연구에서 확인된 것은 여왕벌의 몸에 축적된 화학물질 일부가 생식 과정에서 알로 이동하는 생리적 현상이다.
알로 이동한 농약이 실제 새끼 벌의 발달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여왕벌이 얼마나 오랫동안 농약을 알로 이동시킬 수 있는지, 농약 종류에 따라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지 역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농약 축적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알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하는 ‘임계점’에 도달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 경우 낮은 수준의 농약 노출이 장기간 누적되면서 벌 군집의 붕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니클리시 교수는 “농약이 여왕벌의 알에 축적돼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하는 수준까지 이르면 전환점이 생길 수 있다”며 “화학물질이 서서히 축적되는 효과가 지연된 군집 붕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향후 농약의 종류와 노출 기간에 따른 차이, 알과 유충의 발달 및 군집 전체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규명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