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섭 AI 진테제] 미중 AI패권 경쟁…누가 무엇을 잠그나

[지디넷코리아]

최근 사흘간 쏟아진 뉴스를 추적하며 필자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두가 무언가를 잠그고 있었다. 7월 20일 블룸버그는 중국 Z.AI(옛 즈푸AI)가 중국산 칩만으로 1기가와트(GW) 규모 데이터센터를 완공했다고 보도했다.

21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상무부가 AI 모델 가중치와 칩 설계의 해외 반출을 막는 수출통제를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같은 날 워싱턴에서는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이 중국 AI 모델에 대한 제재 가능성을 언급했고, 이튿날 텍사스에서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정반대로 중국 모델을 옹호하는 인터뷰를 내놨다. 그리고 그 주에 공개된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의 투자자 회의 실록에는 또 다른 자물쇠가 등장한다.

얼핏 뒤엉킨 뉴스처럼 보이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 장면들은 하나의 원리로 정리된다. 각 주체가 무엇을 잠그려 하는지를 보면, 그 주체가 무엇을 진짜 자산으로 여기는지가 드러난다.

1. 모두가 잠그고 있다, 다만 서로 다른 것을

베센트 장관이 잠그려는 것은 모델이다. 그는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해외 모델들이 우리의 훌륭한 기업들로부터 훔치고 있다는 게 확인되면, 그 절도를 근거로 제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모델에서 미국 대형언어모델의 ‘워터마크’가 발견된다는 주장과 함께다. 여기서 절도로 지목된 기법이 증류(distillation, 큰 모델의 답변을 교재 삼아 작은 모델을 학습시키는 방식)다. 오픈AI와 앤스로픽 역시 중국 경쟁사들이 자사 모델의 능력을 빼갔다며 차단을 요구해 왔다. 앤스로픽은 지난달 미 상원에 보낸 서한에서 알리바바가 “사상 최대 규모의 증류 공격”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잠그려는 것은 가중치다. FT 보도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Z.AI 등과 협의, AI 모델 가중치(weights, 모델의 실력이 담긴 학습 결과물)와 학습 데이터의 해외 이전, 화웨이 등이 설계한 칩 IP의 해외 생산, 나아가 서방의 중국 AI 기업 인수까지 통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안광섭 세종대 겸임교수

주목할 대목은 API와 클라우드 서비스는 계속 열어두는 방향이라는 점이다. ‘빌려 쓰는 것’은 허용하되 ‘소유하는 것’은 막겠다는 구분인데, 이는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써온 논리의 거울상이다.

같은 날 나온 Z.AI의 1GW 데이터센터는 이 빗장의 물적 토대다. 1GW면 약 75만 가구가 동시에 쓰는 전력 규모다. 엔비디아 칩 없이 중국산 가속기만으로 이 인프라를 세웠다는 것은, ‘끊겨도 스스로 돌아간다’는 자급의 선을 넘었다는 판단의 근거가 된다. 지킬 것이 생겼으니 잠그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이 보도는 익명 소식통에 기댄 것으로, 시설도 아직 부분 가동 단계라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2. 젠슨 황의 지도에서 자산은 모델이 아니다

이 구도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 젠슨 황이다. 그는 악시오스(Axios) 인터뷰에서 “이 중국 모델들은 훌륭하다. 훌륭한 오픈소스 모델은 사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기업이 중국 모델을 써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당연하죠”라고 답했고, “무료 AI는 하드웨어에 좋고, 칩에 좋고, 데이터센터에 좋다”고 했다. 심지어 제재의 명분인 증류에 대해서도 “AI로부터 배우는 것은 지능의 근본”이라고 맞받았다.

이 발언을 신념의 표명으로 읽으면 핵심을 놓친다. 20년간 GTM(Go-To-Market) 전략을 컨설팅해 온 필자의 경험상, 최고경영자의 공개 발언은 심경 고백이 아니라 청중이 정해진 포지셔닝 행위다. 황의 발언을 엔비디아의 사업 구조 위에 올려놓으면 번역이 달라진다. 중국 오픈모델이 전 세계에 퍼질수록 그 모델을 돌릴 추론용 컴퓨팅 수요가 늘고, 중국 밖에서 그 수요를 받는 칩은 대부분 엔비디아다.

황에게 중국 오픈모델은 경쟁자가 아니라 자기 칩의 수요를 만들어주는 유통망이다. 실제로 황은 최첨단 칩의 대중국 수출 제한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칩은 잠그되 모델은 열자는 것, 이것이 엔비디아의 최적해다.

그래서 지금 그어지는 전선은 미국 대 중국이 아니다. 미국 안에서, 무엇을 무기로 볼 것인가를 놓고 그어지고 있다. 재무부는 연산능력을 국가 자산으로 본다. 베센트는 미국의 글로벌 AI 연산능력 점유율을 현재 50%대에서 수년 내 70~8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해 왔다. 모델 회사들에게는 모델이 곧 사업이니 모델이 지켜야 할 자산이고, 칩 회사에게 모델은 자유롭게 흘러야 할 수요 창출 장치다. 같은 진영 안에서 재무부, 칩 회사, 모델 회사가 각자 다른 것을 잠그자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3. 딥시크가 잠근 것은 사람이었다

이 지도의 마지막 조각이 딥시크다. 딥시크는 지난 6월 창사 이래 첫 외부 투자 유치를 마무리했다. 조달 규모는 500억 위안(약 74억 달러)을 넘고, 투자 후 기업가치는 3500억~4000억 위안(약 520억~590억 달러)으로 평가됐다. 텐센트가 100억 위안, CATL이 50억 위안을 넣었고 국가AI산업투자기금도 직접 출자했다. 그런데 최대 출자자는 량원펑 본인이다. 약 200억 위안, 라운드 전체의 40% 안팎을 창업자가 직접 넣어 지배권을 오히려 단단히 했다.

중국 매체들이 공개한 4시간짜리 투자자 회의 실록에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딜의 조건이다. 량원펑이 투자자들에게 요구한 것은 지분율도 이사회 자리도 아니었다. 딥시크의 사람을 빼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오픈소스로 모델을 열고, API 가격을 낮추고, 슈퍼앱이 될 생각도 없다고 말하는 회사가 유일하게 잠근 자산이 인재였다는 뜻이다. 모두가 모델과 칩과 연산을 놓고 다투는 판에서, 정작 프런티어 경쟁의 실질적 병목이 어디인지를 이 딜 조건이 폭로한 셈이다. 모델은 증류되고 칩은 대체되지만, 그것을 만드는 팀은 복제되지 않는다.

이렇게 겹쳐 보면 자물쇠의 목록이 완성된다. 재무부는 연산을, 모델 회사는 모델을, 중국은 가중치와 칩 IP를, 엔비디아는 칩만을, 딥시크는 사람을 잠근다. 잠금 대상이 곧 각자의 대차대조표에서 가장 값진 항목이다.

이 목록은 기업의 의사결정 기준도 바꾼다. 어제까지 순수하게 기술적이었던 모델 선정에 지정학이라는 변수가 끼어들었다. 던져야 할 질문은 ‘어느 모델이 최고인가’가 아니라 ‘나는 어느 스택에 기대고 있고, 그것이 끊기면 대안이 있는가’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렇게 물어야 한다. 우리 조직에서 남이 가져가면 치명적인 자산, 즉 잠가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한국의 위치도 이 질문 위에서 다시 보인다. 중국이 가장 뒤처진 병목인 HBM(고대역폭 메모리)의 세계 공급을 사실상 한국이 쥐고 있다. 아직 아무도 완전히 잠그지 못한 길목에 한국이 앉아 있다는 뜻인데, 이 지렛대의 사용법은 별도의 칼럼에서 다룰 만한 주제다.

다음 관전 지점은 9월로 조율 중인 첫 미중 정부 간 AI 회담이다. 미국 대표는 다름 아닌 베센트 장관이다. 기술 규제 담당자가 아니라 돈과 제재를 다루는 사람이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는 것 자체가, AI가 상품의 자리를 떠나 국가 경제안보의 언어가 됐다는 신호다. 그 테이블에서 각국이 어떤 자물쇠를 꺼내 드는지 지켜보면, 이 경쟁의 다음 국면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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