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숭이두더지쥐 여왕의 비밀…’냄새’로 다른 암컷 번식 막았다

[지디넷코리아]

벌거숭이두더지쥐 군집에서 암컷으로 사는 것은 고달픈 일이다. 암컷들은 여왕이 지배하는 지하 터널을 관리하고 여왕의 새끼를 돌보며 평생 봉사한다. 군집 내에서 오직 여왕 한 마리만 번식하고 나머지 암컷들은 불임 상태로 살아간다.

그런데 여왕 벌거숭이두더쥐는 이런 독재체제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었을까? 과학자들이 벌거숭이두더쥐 여왕이 이런 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비결을 풀어냈다.

기즈모도, 어스닷컴 등 외신은 22일(현지시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최신 연구를 인용해 여왕 벌거숭이두더지쥐가 다른 암컷의 번식을 억제하는 특정 화학 물질을 분비한다고 보도했다. 이 화합물 냄새가 다른 암컷들의 불임을 유발해 여왕 혼자 자손을 독점하며 왕국을 통치하도록 만든다는 설명이다.

벌거숭이두더지쥐 여왕이 특정 화합물을 내뿜어 다른 암컷들의 불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미지=Jannissimo/위키커먼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엄격한 분업 체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독특한 사회성을 지닌 포유류다. 단 한 마리의 여왕만 번식하는 이런 집단 행동은 꿀벌이나 개미 같은 곤충에게는 흔하지만, 포유류에서는 극히 드물다.

꿀벌과 달리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신체적 구조가 정해져 있지 않아 어떤 암컷이든 여왕이 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여왕이 죽으면 암컷들이 왕좌를 두고 치열하게 다툰 끝에 새로운 여왕이 즉위한다. 그러나 여왕이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다른 암컷들의 번식 능력을 완벽히 통제하는지는 그 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기존에는 여왕이 물리적으로 가장 크고 강해서 통치권을 유지한다는 설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다른 암컷들의 생식 기관이 발달하지 않는 이유나, 포유류에서 젖 분비를 촉진하고 번식을 억제하는 ‘프로락틴’ 호르몬 수치가 높게 유지되는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이에 연구진은 사회적 지위가 다른 벌거숭이두더지쥐들의 체취 샘플을 채취해 분비되는 화학 물질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여왕 벌거숭이두더지쥐만이 ‘이소프로필 미리스테이트(isopropyl myristate)’라는 특정 화학 물질을 다량 방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화합물은 일반 구성원에게서는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

해당 논문 공동 저자인 독일 베를린대학 의과대학 베를린 막스 델브뤼크 분자의학센터의 신경과학자 모하메드 칼라프는 “벌거숭이두더지쥐의 화학적 프로필을 파악하는 것이 목표였다”며 “여왕에게서만 특이적으로 생성되는 화합물을 찾았을 때 매우 흥분했다”고 전했다.

이 화학 물질의 생산량은 여왕의 번식 주기에 따라 변동하는데, 배란기에 정점을 찍고 임신과 수유기에는 감소했다.

연구진은 이 냄새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번식력이 억제된 일반 암컷들을 격리한 뒤 후각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다. 그러자 암컷들의 프로락틴 수치가 떨어지면서 생식 기관이 활성화되었고, 수컷과 짝짓기가 가능한 상태로 변화했다. 즉, 여왕이 직접 공격하지 않더라도 ‘냄새’만으로 다른 암컷의 번식을 억제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다만 연구진은 여왕 본인은 왜 이 냄새의 불임 효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지 그 정확한 기전은 아직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실험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도 발견됐다. 인위적으로 이 화학 물질의 공급을 끊자, 군집 내 암컷들 사이에서 새로운 여왕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칼라프는 “단 하나의 향기만으로 평화를 유지하고 폭력을 예방한다는 것은 공상 과학처럼 들릴 수 있지만,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세계에서는 엄연한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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