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디넷코리아]
“이 영화가 얼마나 적절하고 시의적절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변한 것이 없는지 깜짝 놀랐다. 닉슨은 더 이상 없지만, 트럼프가 있다. 트럼프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파괴하기 쉽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2021년 자신의 출연작 중 하나인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을 다시 봤다. 그는 실제 주인공인 밥 우드워드에게 영화를 다시 본 감상을 이렇게 전했다.
레드퍼드 별세 소식을 접하면서 우드워드가 공개한 일화다. 이 일화는 두 사람의 우정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반세기가 지났지만, 세상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는 공동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레드퍼드와 우드워드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출발했다. 한 사람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 배우였고, 다른 한 사람은 미국 탐사 저널리즘 전성기를 연 기자였다.

둘은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을 통해 운명처럼 연결됐다. 밥 우드워드가 동료 기자인 칼 번스타인과 함께 쓴 이 책은 워터게이트 특종 보도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하야하게 만든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워터게이트 보도에 큰 감명을 받은 레드퍼드는 두 기자에게 영화로 만들자고 하지만 둘의 초기 반응은 시큰둥했다. 자유주의 성향이 강했던 번스타인은 전화선을 뽑아버렸고, 우드워드도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결국 레드퍼드는 설득에 성공했다.
우드워드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워터게이트는 누구나 결말을 알고 있는 사건”이라는 할리우드 영화사들의 우려에 그는 “중요한 것은 실제 탐사 과정과 기자들의 긴장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영화가 극적 스토리에 치우치기보다, 사회적 의미를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원했다.
레드퍼드가 2013년 LA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밝힌 애기는 더 눈길을 끈다.
그는 처음엔 무명의 배우들이 등장하는 소규모 흑백 영화로 만들길 원했다. 자신이 직접 출연할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할리우드 영화사가 제작에 참여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제작에 동의한 워너브러더스가 “레드퍼드가 출연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 때문이었다.
이렇게 그는 평생의 친구가 될 우드워드 역을 맡게 됐다. 칼 번스타인 역은 더스틴 호프턴이 연기했다. 영화는 아카데미 4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그러나 레드퍼드에게 중요한 것은 상업적 성공이 아니라 영화의 메시지였다. 실제로 레드퍼드는 독립영화를 사랑하고, 아낌 없이 지원했다. 독립영화의 산실로 자리 잡은 ‘선댄스 영화제’는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 중 하나로 꼽힌다. 스티븐 소더버그, 쿠엔틴 타란티노를 비롯한 많은 젊은 감독들이 선댄스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그는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독립 영화 지원과 사회적 정의 실현에도 기여했다. 이런 태도는 우드워드의 존경을 받았다.

영화를 다시 본 레드퍼드가 우드워드에게 솔직하게 감상을 전한 것은, 두 사람이 여전히 ‘진실을 말하고 기록하는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여전히 유효한 정치적·사회적 메시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변한 것이 거의 없다”는 깨달음은 씁쓸하면서도 묵직하다. 이 발언은 두 사람의 관계를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바꾼다. “그때 우리가 했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메시지였다. 우드워드에게는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을, 레드퍼드에게는 사회적 책임을 자극하는 신호였다.
세상은 진화했지만, 권력과 언론, 민주주의의 긴장은 여전히 제자리다. 두 사람은 젊은 날의 작업이 지금도 유효함을 깨달았다. 그것이 늦은 나이에 다시 우정을 확인하게 만든 힘이었다.
레드퍼드 별세 소식에 우드워드는 엑스(X)에 추모글을 올렸다.
“그가 보여준 우정과 불굴의 독립심을 사랑하고 존경했다. 그리고 어떤 플랫폼이든 활용해 세상을 더 나은 곳, 더 공정하고 밝은 곳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의 방식도.”
금발의 미남 배우, 그러나 단순한 스타가 아닌 사회적 실천가 로버트 레드퍼드. 그의 삶과 우정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그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