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양자정보도 하나로 묶어 측정 가능하다고

[지디넷코리아]

국내 연구진이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흩어진 양자정보를 하나의 상태로 묶어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지금까지는 특정 시점이나 장소의 양자정보를 따로 들여다봤다면, 이번 연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양자정보까지 하나로 연결해 관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석형 UNIST 물리학과 교수와 권혁준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 연구팀은 시공간 상의 여러 지점에 존재하는 양자 정보를 간섭계로 측정해 하나의 ‘시공간 양자상태’로 재구성하는 이론을 정립했다고 20일 밝혔다.

시간 순서가 모호한 양자사건의 상관관계를 측정하는 간섭계 개략도. 두 양자계의 시간 방향이 함께 맞춰지는 ‘동기화’를 이용하면 시간 방향에 따른 차이를 측정할 수 있음을 나타냈다.(그림=UNIST)

양자이론은 같은 시간에 서로 떨어진 입자들의 관계는 ‘양자 상태’로, 한 양자계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과정은 ‘양자 채널’이라는 별도의 수학적 대상으로 표현해 왔다.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통합된 시공간으로 보는 상대성이론과의 통합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연구팀은 간섭계에서 얻은 신호로 시공간 양자상태를 재구성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연구팀은 사건의 순서와 관계없이 일관되게 작동하는 ‘인과 무지 측정’의 조건을 먼저 정의한 뒤, 이 조건을 만족하는 측정을 기존 양자실험에서 널리 쓰이는 간섭계로 구현할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간섭계는 양자가 여러 경로를 동시에 지나는 성질을 이용해 두 경로의 차이를 신호로 읽는 장치다. 다양한 양자 실험에서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표준 측정 기술이다.

연구팀은 또 간섭계에서 측정되는 간섭신호에 시공간 양자상태 정보가 담겨 있어, 이를 통해 시공간 여러 지점에 분포한 양자정보를 하나의 상태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 ‘과정행렬’보다 적은 매개변수로 양자과정을 표현할 수 있다. 여러 양자과정이 확률적으로 섞여 있는 경우에도 각각을 따로 나타내는 대신 하나의 ‘혼합된 시공간 양자상태’로 기술할 수 있다.

이러한 혼합 상태의 표현은 ‘양자 비마르코프성’을 기술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양자 비마르코프성은 양자계의 과거 상태가 현재나 이후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기억 효과’를 말한다.

이석형 UNIST 교수.(사진=UNIST)

이석형 교수는 “서로 다른 양자과정의 조합이 같은 시공간 양자상태로 나타날 수 있다”며 “이러한 시간적 기억 효과를 보다 간결하게 다룰 수 있는 틀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간섭계 신호만으로 양자과정을 측정하면, 미시세계에서는 서로 다른 양자과정이 동일 신호로 나타날 수 있는데, 이는 ‘나침반’ 역할을 하는 보조 양자를 추가해 해결할 수 있음도 증명했다.

두 양자 과정의 시간 방향이 함께 맞춰지는 새로운 시공간 양자 상관관계인 ‘동기화’를 규명하고, 이를 이용하면 미시세계의 시간반전 대칭성 때문에 구분이 어려웠던 양자 과정도 구별할 수 있음을 확인한 것.

시간반전 대칭성은 어떤 물리적 과정이 시간이 앞으로 흐를 때나 뒤로 거꾸로 흐를 때 똑같은 법칙이 적용돼 그 방향성을 구분할 수 없는 물리적 성질을 뜻한다. 예를 들어, 허공에 공을 던지는 장면을 비디오로 찍은 뒤 되감기를 해보면 궤적만으로는 공이 원래대로 올라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거꾸로 재생되어 떨어지고 있는 것인지 구별하기 힘든 것과 흡사하다.

하지만 이 공에 째깍거리는 ‘시계’를 하나 붙여서 던진다면, 영상 속 시곗바늘이 도는 방향만 보고도 시간이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처럼 보조 양자를 ‘시계’로 활용하는 이론적 모델을 만들어, 겉보기엔 구별이 불가능했던 양자과정의 시간 방향성도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입증해 냈다.

이석형 교수는 “시간과 공간을 함께 아우르는 양자 상태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지는 양자정보과학과 양자 기초론의 중요한 난제로 남아 있었다”며 “이번 연구는 양자 상태를 ‘측정 결과로부터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실험적 질문에 답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 이론은 광학·응집물질·초전도 등 다양한 분야의 양자정보처리 과정을 효율적으로 표현하고 분석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양자 레이더나 입자 충돌 실험처럼 사건의 시점과 위치를 미리 알기 어려운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는 △UNIST 2025 리서치 펀드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한국연구재단(NRF) △고등과학원 개인연구비 등의 지원을 받았다. 성과는 물리학 분야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게재됐다.

한편 이석형 교수는 2016년 서울대 물리학과 수학 전공 학사, 2022년 대학원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4년부터 UNIST 조교수로 재직중인 33세의 유망 신진 연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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