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김승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의 내부 분열 때문에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다며 책임 공세를 이어가자, 이란 수뇌부가 정권 안정성을 과시하는 단결 메시지를 냈다.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민간 내각이 실권을 잃고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강경파가 전권을 행사하면서 협상이 깨졌다는 미국 측 주장과 주요 보도에 대한 맞대응으로 보인다.
이란 반(半)관영 타스님통신에 따르면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 골람호세인 모흐세니 에제이 대법원장은 23일(현지 시간) 일제히 입장문을 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갈리바프 의장은 엑스(X·구 트위터)를 통해 “이란에는 급진파도 온건파도 없다. 모두가 이란인이자 혁명가”라며 “강철 같은 단결과 최고지도자에 대한 완전한 복종을 바탕으로 침략자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만들 것”이라는 똑같은 글을 올렸다.
에제이 대법원장도 같은 입장을 공유한 뒤 “비열한 미국 대통령은 ‘강경파’와 ‘온건파’라는 것이 서구 정치권에서 만들어진 무의미한 말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이란에서는 모든 세력이 지도자와 완전히 일치된 상태로 단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은 “전장(battlefield)과 외교는 하나의 전쟁 안에서 완전히 조율돼 있다”며 “이란 국민은 그 어느 때보다 하나로 단결돼 있다”고 강조했고, 모하마드 레자 아레프 제1부통령도 “영토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모든 구분을 초월한다”며 “우리는 하나의 영혼, 하나의 국가”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실권을 쥔 강경파로 지목하고 있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도 메시지를 냈다.
에스마일 카아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사령관은 “이란 전투력의 척추는 거리의 단결과 지도부의 결속”이라며 “국가와 정부의 흔들림 없는 단결과 최고지도자에 대한 완전한 복종을 통해 침략자가 반드시 후회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민간 정부를 이끄는 대통령·국회의장과 같은 문구다.
혁명수비대 입장이 반영되는 프레스TV는 “카아니 사령관 메시지는 대중과 국가기관의 하나된 의지가 저항의 축을 위한 뚫을 수 없는 방패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고 부연했다.
민간 정부와 군부가 동일한 성명을 공유한 뒤,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도 입장을 냈다.
IRNA에 따르면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이란) 국민의 단결로 적진에 균열이 발생했다. 우리 결속은 강철처럼 단단해지고 적들은 더욱 굴욕적이고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적의 미디어 작전은 국민의 심리를 겨냥해 단결과 국가안보를 훼손하려는 것”이라며 “우리의 부주의로 그들의 불순한 의도가 실현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은 지금 누가 지도자인지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전투에서 대패하고 있는 ‘강경파’와 전혀 온건하지 않지만 점점 존중받고 있는 ‘온건파’ 사이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정말 혼란스럽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매체 채널12는 갈리바프 의장이 대미 협상팀에서 물러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카타르가 제안한 이란 선박 20척-걸프 국가 선박 20척 상호 통과 방안이 국내 강경파 반대로 무산되면서 직을 내려놨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도 같은 날 다수의 이란 내 소식통을 인용해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시기의 1인 절대권력 구조가 무너지고 강경 군부 중심의 집단 의사결정 체제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최고지도자는 이미 상징적 존재로 물러났으며, 혁명수비대가 전투뿐 아니라 대미 외교까지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란 정권은 서방의 내분 관측을 일축하며 대오를 유지하고 있다. 최고지도자가 실각하고 협상파와 강경파가 내분을 벌인다는 미국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2차 협상이 무산된 이유는 자국 분열이 아닌 미국의 해상 봉쇄 지속 때문이라는 것이 이란 입장이다.
이란은 유사시 아랍에미리트(UAE) 루와이스·사우디아라비아 아브카이크 등 걸프 지역 정유시설을 타격하겠다는 입장이다. 유가 위기를 극대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타스님통신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해저 인터넷 케이블망 차단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보인다.
NYT는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제재 완화와 핵(우라늄) 관련 타협안 등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외교적 해법을 받아들기 전에는 어떤 양보도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전문가를 인용해 “이란 지도부는 미국보다 고통을 감내할 여력이 크다고 믿는 것 같다”고 봤다.
다만 미국과 이란은 우라늄 농축 동결과 200억 달러 규모 동결 자산 해제 등을 논의하는 물밑 협의를 유지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양국이 실제로 전쟁 재개를 고려한다기보다는, 상대국을 최대한 흔들어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고강도 압박을 이어간다는 해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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