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원인 유전자 1200개라더니”…뇌에서는 두 갈래로 모였다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원인 유전자만 12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질 만큼 복잡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가 뇌의 분자 수준에서는 크게 두 가지 상태로 나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자폐를 일으키는 유전적 원인은 서로 달라도 뇌에서 나타나는 유전자 활동에는 공통된 패턴이 있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 김은준 단장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디지털바이오컴퓨팅연구단 공동 연구팀이 이 같은 사실을 규명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전사체는 특정 세포나 조직에서 만들어진 전체 RNA의 집합이다. 쉽게 말해 어떤 유전자가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유전자 활동 지도’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자폐 위험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생쥐 모델을 분석해, 서로 다른 유전자 변이가 결국 두 가지 상반된 전사체(전체 RNA 집합) 상태로 모인다는 점을 입증했다. 전사체는 어떤 유전자가 활발히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유전자 활동 지도’다.

◆17종 자폐 유전자 분석했더니…두 가지 분자 상태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사회적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반복 행동 등을 보이는 신경발달 질환이다. 원인 유전자가 매우 다양해 기존 연구 방식으로는 공통의 원리를 찾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은 자폐 위험 유전자 17종의 돌연변이 생쥐 모델을 제작한 뒤, 뇌 전전두엽의 RNA 시퀀싱 데이터 1008개를 정밀 분석했다. 항우울제 플루옥세틴과 기분안정제 리튬을 투여한 조건 등 총 204개 환경을 비교했다.

분석 결과 발병 원인이 달라도 유전자 활동은 크게 두 그룹으로 묶였다.

한 그룹은 신경세포 간 신호를 전달하는 시냅스 관련 유전자 활동이 줄어든 반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거나 RNA를 가공하는 활동은 늘었다. 두번째 그룹은 정반대로 시냅스 관련 유전자 활동은 늘고 유전자 발현 조절·RNA 가공 관련 활동은 줄었다.

즉 발병 원인 유전자는 제각각이어도 뇌 내 분자 수준에서는 유전자 발현이 두 가지 일정한 패턴으로 모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특정 유전자가 한 그룹에 고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암수, 뇌 부위, 발달 시기에 따라 그룹이 바뀌기도 했다. 연구진은 이를 유전자 분류 기준이 아닌 조건에 따라 변하는 ‘동적 분자 상태’로 정의했다.

◆같은 약물에도 다른 반응…인간 자폐 환자 뇌서도 동일 패턴

두 그룹은 약물 반응에서도 명확한 차이를 보였다. 플루옥세틴과 리튬을 투여했을 때 첫번째 그룹은 비정상적 유전자 활동이 정상 수치 쪽으로 일관되게 이동했다. 반면 다른 그룹은 모델이나 유전자 집단에 따라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다만 연구진은 이를 약물이 자폐 증상을 치료했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서 말하는 ‘회복’은 약물 투여 뒤 유전자 활동이 정상 대조군에 가까워졌다는 뜻으로, 행동이 개선됐거나 실제 환자에서 치료 효과가 확인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연구진은 약 100만개의 세포핵을 개별 분석해 두 그룹의 차이가 여러 신경세포와 비신경세포에 걸쳐 나타나는 것도 확인했다.

추가 실험에서는 실제 자폐 환자의 뇌 전전두엽에서도 같은 패턴이 관찰됐다. 인간과 생쥐에서 공통으로 같은 방향으로 변한 핵심 시냅스 유전자 14개도 발굴했다.

연구진은 이번 성과가 자폐를 원인 유전자만으로 구분하는 대신 실제 뇌의 분자 상태를 기준으로 세분화하고, 이에 따른 약물 반응 차이를 연구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인간과 생쥐의 분자 패턴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현재 단계에서 환자를 두 유형으로 나누거나 어떤 치료제가 효과가 있을지를 예측하는 임상 기준으로 활용할 수는 없다.

김은준 IBS 연구단장은 “자폐는 원인 유전자가 매우 다양해 개별 유전자 연구만으로는 공통의 발병 원리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라며, “다양한 유전적 원인을 공통된 분자적 특징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연구 틀이 제시된 만큼 자폐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미현 IBS 연구위원은 “이번 연구로 자폐 치료 후보 물질에 대한 비교・평가 연구가 보다 체계화될 것”이라며, “향후 인간 유래 세포 등으로 연구 범위를 확장해 자폐 기전과 새로운 치료 전략을 보다 정교하게 연구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syh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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