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전자음악가 키라라(KIRARA)의 궤적은 상실과 결핍을 댄스 음악의 비트로 치환해 낸 치열한 증명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발매한 정규 5집 ‘키라라’와 올해 2월 ‘제23회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그리고 K-팝 대세 그룹 ‘세븐틴’ 버논과의 협업곡 ‘미아(mia)’ 작업, 일본 대형 음악 축제 ‘후지 록 페스티벌’ 출연 등의 행보는 그가 새로운 삶의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타자의 시선과 스스로 벼려낸 분노에 갇혀 있던 과거를 지나, 그는 이제 흩어진 파편들을 묵묵히 그러모으며 온전한 자기 자신을 대면하고 있다.
‘음악을 만드는 즐거움’을 주제로 내세운 셀프 타이틀의 ‘키라라’에서부터 특히 결핍이 아닌 충만을 들려줬다. 키라라는 전자음악에 대한 부당한 처사에 항변해온 전자음악가의 대명사로 통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성소수자 정체성도 그에게 투사 이미지를 부여했다. 하지만 타자의 시선으로 파편화된 조각들을 모아서, 당당한 자기확인의 그림을 완성한 그의 반짝이고 뻐근하면서 아련한 전자음악은 스스로의 고유성을 담보하는 일이 됐다.
이제 키라라의 음악을 관통하는 위로와 연대는 거창한 선언이나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이분법적 수사에도 기대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으로 일상을 영위하겠다는 생활인의 단단한 다짐에 가깝다. 결핍을 방패 삼는 대신 슬픔 위로 천진하고 경쾌한 비트를 얹어내는 그의 방식은, 삶의 부조리를 껴안고 기어이 춤을 추고야 말겠다는 윤리적 미학의 발현이다.
자신을 옭아매던 꼬인 잣대들을 덜어내고 마침내 거울 밖으로 걸어 나온 그에게, 이제 음악은 날 선 투쟁이 아니라 매일의 밥과 같은 자연스러운 삶의 양식이 됐다. 슬픔을 온몸으로 통과해 마침내 다정한 명랑함에 가닿은 전자음악가. 다음은 스스로 고유명사가 되기를 택한 키라라와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눈 서면 인터뷰다.
-9년 전 숨겨뒀던 그 단어를 마침내 지난 2월 한대음 시상식에서 마침내 발음하셨습니다. 무대 위에서 트랜스젠더라는 단어가 발화된 순간, 그것은 단순한 커밍아웃을 넘어 생존의 선언이자 하나의 미학적 사건이 됐는데요. 이 호명이 키라라 님의 음악적 궤적, 혹은 남은 삶의 조각들에 어떤 지각변동을 일으켰나요?(키라라는 ‘제23회 한대음’에서 ‘키라라’로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을 받으면서 ‘9년 전에 상 탈 때 ‘친구들 자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근데 사실 더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저딴엔 에둘러 말한 거거든요. 그때 했어야 했던 말을 지금 할게요. 어떤 단어 하나를 말하지 못했어요. 부모님이 저를 부끄럽게 생각할지도 모르고 어떤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냥 그 단어 시원하게 얘기하고 가겠습니다.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가 만든 앨범이 올해의 일렉트로닉 앨범이 됐습니다. 트랜스젠더 여러분 세상 밖으로 나오세요. 울지 마세요. 여러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지각변동이라고 할 만큼 그렇게 큰 사건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그 수상소감이 제가 최초로 커밍아웃 같은 것을 하는 순간이었다면 제 삶이 받은 영향이 컸겠지만, 저는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제 성정체성에 대해서는 오픈된 상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단어를 힘주어 말했던 것은, 9년 전에 제가 같은 자리에서 그 단어를 말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9년 사이에 없던 용기가 생겨서 그것을 해냈다기보다는, 이제는 그때보다는 더 눈치 볼 것도, 잃을 것도 없어서, 드디어 그 단어를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그것을 할 수 있을 때 했기 때문에, 제 자신을 그렇게 영웅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발화를 하고 나서, 정말 예상했던 모양대로, 딱 세네 달 정도만 힘들 일이 있었고, 사실 그마저도 제가 인터넷을 굳이 찾아보지 않으면 간과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저의 성기 모양을 묻는 디시인사이드 포스트락 갤러리의 게시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낱 성정체성과 관련된 사건 하나가 제 인생을 ‘지각변동’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성정체성이란 정말 하찮은 것입니다. 그 수상소감은 그냥 저의 한풀이입니다.”
-수상 소감이 전해진 날 밤, 누군가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아내와 함께 ‘트랜스젠더가 살고 있대, 자살하지 말래, 나도 할 수 있대’라는 키라라 님의 문장을 거듭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남겨진 자의 외침이 소수자의 곁을 넘어 평범한 생활인들의 일상적 궤도에까지 가닿아 진동을 일으키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시스젠더가 트랜스젠더에게 위로받는다는 일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신기하게 느껴지는 현상입니다. 저의 2026년은 그 신기함에 익숙해지고 초연해지는 연습을 하는 해였습니다. 이제는 저에게 위로받은 그 사람이 시스젠더인지 트랜스젠더인지 인원수를 일일이 셀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평생 박탈감에 시달려왔고, 평생 시스젠더들을 타자화하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넉넉한 어른이 되고 그 타자화의 정도가 옅어졌을 때, 저는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위로에 대해서도 마음이 편해졌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시스젠더에게 위로받은 적도 많았던걸요, 시스젠더들도 트랜스젠더에게 위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는 참 어색하게 느껴졌던 개념이고,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올해 한대음에서 키라라 님은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을, 제자인 멜키(MELKI) 님은 최우수 일렉트로닉 노래를 수상하셨죠. 사제가 동시에 하나의 장르를 증명해 낸 이 장면은, 그동안 말씀해 오신 ‘롤모델로서의 생활인’ 혹은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연대의 증명처럼 읽힙니다. 이 동반 수상은 키라라 님께 어떤 윤리적 위안을 줬나요?
“저는 저의 레슨 일을 사랑합니다. 저는 사실 저의 대외활동만큼이나 음악을 가르치는 일에서도 자아실현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레슨이라는, 이 제가 사랑하는 직업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는 일은 사실 위안보다는 걱정이 더 크게 따라옵니다. 제가 그 순간 시상식장에서 제일 먼저 했던 생각은 ‘이제 멜키 님 다음 앨범 만들기 부담스러우실 텐데 어쩌나’였습니다. 그리고, 이 수상이 ‘연대의 증명’일 수는 있지만, 이제 앞으로, 멜키 님은 연대가 아닌 자립의 힘으로도 음악 활동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윤리적 위안이 됐던 부분이 하나 생각이 나긴 하는데요, 저에겐 멜키 님의 수상이 ‘사랑의 승리’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레슨을 진행하면서 제가 알게 된 멜키 님은 여러모로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저는 그 사건이 그 사실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사랑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 사실이 저에게 안도와 위안이 됐습니다.”
-세븐틴 버논 님과의 작업물 ‘미아(mia)’는 도망치던 키라라 님을 멈춰 세운 곡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K-팝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자문에 버논 님이 ‘충분한 자격’을 몸소 증명해 줬다고 하셨는데요. 타인의 확신이 나의 내면적 장벽을 허무는 이 경이로운 타자성의 경험은, 키라라 님의 창작론에 어떤 균열과 확장을 가져왔습니까?
“사실 그 경험을 한 이후로 새로운 음악을 창작해 보지 않아서, 그 경험이 저의 창작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정말 저 같은 사람은 K-팝 음악을 작곡하든, K-팝 아티스트와 어울려 다니든,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미아’ 작곡 건은 분명 제 삶에서 아주 유니크하고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하지만, 버논 님과 캐럿 분들이 어느 날 하루 저를 받아줬다고 해서 저의 정신세계가 확장되다가 어딘가 활개라도 치게 된다면, 그건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겸허하겠습니다.”
-‘미아’ 발매를 앞두고 ‘이것은 K-팝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하셨죠. 오랜 시간 인디 신을 지켜온 전자음악가의 문법이 거대 산업인 K-팝 시스템 안으로 진입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미학적 충돌과 타협이 있었을 텐데요. 키라라 님이 정의하는 ‘K-팝의 스피릿’이란 결국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미아’를 K-팝으로 분류해야 하는지 주저하는 이유는, 버논 님께서 저에게 이 작업을 수주할 때, K-팝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썼던 계약서들과 산업적인 것들만 생각하면, K-팝의 스피릿이란, 분명 ‘많은 제약’과 ‘많은 돈’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버논 님이 저에게 가르쳐 준 것은 그런 게 아닌 것 같고, ‘생각보다는 나다워도 되는 일’. 이것이 그분이 저에게 경험시켜 준 (선물해 준) K-팝의 스피릿인 것 같습니다.”
-버논 님은 ‘미아(mia)(행방불명)’가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전하는 찬가라고 했습니다. 키라라 님의 오랜 테마인 ‘상실’과 ‘위로’가 아이돌이라는 메신저를 통과하며 발화될 때, 사운드의 질감이나 공간감은 어떻게 재설계됐는지 궁금합니다.
“이 음악을 함께 만든 나머지 3인방이 모두 동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미아’는 블랙코미디인 것 같습니다. 분명 상실의 노래인데 편곡은 우스꽝스럽고 천진하니까요. 반주가 화자를 좀 놀리고 있는 느낌도 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음악이 물과 기름이 잘 분리돼 맛이 좋은 마라탕 같은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최대한 정서를 직관적으로 편곡함으로써, 한쪽의 대비를 극대화하려고 했던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런 육수 위에, 나머지 고추기름과 양념 같은 것들은 나머지 송라이터 세 명이 또 잘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K-팝은 흔히 무결점의 세계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키라라 님의 음악은 파편화된 조각들을 모으고 상처를 드러내는 방식(‘조각모음’)을 취해왔습니다. 완벽함을 요구하는 장르 안에서 특유의 결핍과 슬픔의 정서가 어떻게 기입될 수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걸 기입시킨 사람은 제가 아닌 버논 님입니다. 저는 아주 직접적인 단어를 써가며, 저처럼 이렇게 대놓고 결핍에 대해 발화하는 음악가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도 되는지 정말 재차 여러 번 캐물었지만, 버논 님은 무조건 다 된다고만 했습니다. 책임을 모두 그에게 돌리겠습니다. 기자님께서 주신 질문 그대로, 정말 버논 님에게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의 대답을 추측해보기는 좀 조심스럽지만, 이 질문을 그쪽에 돌렸을 때, ‘그럼 무엇이 완벽이냐’부터 논지가 또 시작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한정인(코스모스 슈퍼스타) 님과의 긴밀한 협업 역시 눈에 띕니다. 그가 ‘버논은 이 앨범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고 평했는데요. 두 전자음악가가 K-팝 아티스트의 비전을 소리라는 물성으로 번역해 내는 과정에서 가장 치열하게 논의한 기술적, 혹은 윤리적 쟁점은 무엇이었나요?
“기술적으로는 가장 먼저 사이드체인의 깊이인 것 같습니다. 얼마나 신나야 하는가, 얼마나 직관적으로 정서를 떠먹여주어야 하는가의 측면에서, 곡 전반적으로 킥 드럼 소리에 맞추어 들어간 사이드체인이 임계점이 어디여야 하는가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외에 고려한 ‘윤리적 쟁점’은 한정인 씨와 저 사이의 교우관계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인터뷰에서 밝히기엔 분명 너무 개인적인 감정 같습니다. 친구를 사랑합니다.”
-일본 대형 음악 축제 후지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십니다. ‘록의 스피릿을 갖고 전자음악을 한다’는 선언이, 가장 거대한 록의 제전에서 어떻게 치환될지 무척 기대되는데요. 나에바의 숲에서 관객들은 키라라의 어떤 폭발을 목격하게 될까요?
“섭외를 받던 그때, 한창 이런저런 여름 섭외들에 응하느라 바쁘기도 했었고, 이것이 그중 하나라는 느낌이 우선 있었습니다. 또는 뭔가 커 보이는 막중한 책임감의 일거리로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후에 제가 이곳에서 공연한다는 사실이 어나운스 됐을 때, 주변에서 정말 많이 축하해주시는 것을 보고, 이게 이렇게 축하받을 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기분이 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어렸을 때 후지 록을 꿈꿨더군요. 사실 이제 저는, 제 직업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모든 이벤트를 뼈 빠지게 준비한다는 느낌이지, 어느 공연이 각별하니 그것을 특히 이를 갈고 준비하는 그런 느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저는, 폼이 좀 올라와 있는 것 같긴 합니다. 그러니 공연을 분명 잘 해낼 것 같습니다. 다만 뭔가 다를 것이 있다면, 제가 그 무대 위에서 많이 행복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저와 관객들이 방긋방긋 많이 웃는 현장이 될 것 같습니다.”
-정규 5집 ‘키라라’는 자신을 피사체 삼아 찍은 사진과도 같다고 하셨습니다. 타인의 시선과 투사에 갇혔던 4집의 분노를 지나, 거울 밖의 온전한 자신을 직시하게 된 이 앨범은, 어떤 결핍도 핑계 삼지 않겠다는 예술가의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자립 선언으로 읽어도 될까요?
“이게 왜 잔인한가요? 전 행복한데요. 어떤 결핍도 핑계 삼지 않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제가 제 자신에게 잔인해지는 행위까지는 아닙니다. 제 나이도 이제 삼십 대 중반인데, 정신 차려야죠. 언제까지 제 청소년기의 우울과 불안을 저의 자기소개에 포함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제 그것은 제가 원하는 일이 아닙니다. 마침내 어른이 된 저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제가 편하게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그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 잔인한 것은 없습니다.”
-과거 ‘예쁘고 강하다’는 수식어 뒤에 숨으려 했던 자신을 반성한다고 하셨습니다.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이분법적 수사에 기대지 않고, 오직 ‘키라라’라는 고유명사로 서기 위해 덜어내야 했던 가장 무거운 장식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못생긴 장식인데, 제가 시스젠더에게 느끼는 박탈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땐 그것이 제 삶의 원동력이 돼 줄 것이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원동력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 지금 저의 결론입니다. 제가 과거에 이분법적인 수사로 제 자신을 표현했던 것은, 제가 어느 한쪽이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나이 먹고 여자가 돼 남자가 돼 뭐 하겠습니까. 저는 이제 무슨 신인 음악가도 아닌데, 이뻐지고, 강해져서, 뭐 하겠습니까. 저는 버논 님이 허락한 것처럼, 여러분이 허락해주신 것처럼, 이제 저다우면 될 일 같습니다. 그렇게 믿고자 합니다.”
-키라라 님의 음악은 명확한 메시지를 지닌 텍스트(가사)를 거부하고, 누군가의 음성 편지나 ‘1, 2, 3’ 같은 파편적 단어들을 얹는 방식을 취합니다.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 혹은 불완전한 파장으로 사용할 때 발생하는 음악적 여백은 결국 무엇을 담아내기 위함인가요?
“우선, 파편화된 언어로 음악을 만드는 일은, 정형화된 언어로 음악을 만드는 일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형식을 뒤틀었다는 것에서 오는 일차원적인 쾌감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더 독특한 맥락이 남는 것은, 기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 음악이 가지는, 언어와 언어 사이의 공백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파편화된 언어로 음악을 만드는 일을 ‘주제를 흐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에게는 파편화된 언어를 사용했을 때 더 명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주제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여러모로 파편화된 언어를 편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제가 파편화된 사람이어서는 아닐는지, 또는 어떤 비겁함에서 기인하는 건 아닐는지 한번 추측해봅니다.”
-대표곡 ‘위시(Wish)’에 담긴 본래의 개인적 사연을 이제는 관객 각자의 소망으로 환원하기로 했다고 하셨죠. 창작자의 사적인 애도가 불특정 다수의 춤과 환희로 오독되거나 재해석되는 과정을 기꺼이 허락하는 것, 그것이 댄스 음악이 가진 가장 숭고한 기능이라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것이 대중음악의 기본적인 기능이라고 생각하지, 댄스 음악의 숭고한 기능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낯간지러운 일을 숭고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냥 저는 사람들이 이 음악을 모두 자기 사연처럼 듣고, 전 돈 많이 벌고, 이젠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선한 사람이 만든 음악은 선할 수밖에 없다’는 성선설을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혐오와 편견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명랑한 댄스 음악을 주조해 내는 행위는 무해함을 가장한 가장 맹렬한 저항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이 역설에 동의하시나요?
“저는 제 음악이 수동성 공격과 당사자성 농담이 가득하다는 점에서 가학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착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두운 집 방구석 DAW 앞에만 앉으면 가학적인 음악을 만듭니다. 통찰이 깊은 분들은 이 공격적인 음악을 만든 사람이 사실 유약하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제 음악은 ‘착한 사람이 열심히 막 공격해 보려고 하는’ 음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막 나쁜 마음을 먹고 저항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전 그냥 컴퓨터 앞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누굴 보고 강해져야 하는지 레퍼런스가 없어서 떠난 친구들을 위해 스스로 롤모델이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음악을 넘어 ‘잘 살아가는 삶’ 자체가 누군가에게 레퍼런스가 되는 시대에, 2026년 하반기 키라라가 증명해 보일 다음 조각은 어떤 형태일지 묻고 싶습니다.
“저 롤모델 다 한 것 같습니다. 정말 다 했습니다. 저 혼자 할 만큼은 다 했습니다. 제가 설사 유엔 사무총장이 돼도 그건 제가 위대한 것이지 트랜스젠더가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한 명이 위대해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쪽수’가 많아져야 합니다. 저처럼 자아실현을 이룬 트랜스젠더가 세상에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처럼 자아실현을 이루는 보통의 사람들도 많아졌으면 합니다. 저는 받은 것이 너무 과분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해야 제가 받은 것을 ‘전략적으로’ 잘 흘려보낼 수 있을지, 제가 할 수 있는 고민을 해보고 싶습니다. 대중 분들께, 케이팝으로 번 돈을 어처구니없는 곳에 사용하는 저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마도 해당 인터뷰 글은 비행기 안에서 쓰고 계시겠죠. 지금은 무엇을 위해 어디로 향하는 길이며 현재 비행기 안의 풍경은 어떤가요? 지금 이 정경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해주신다면요. 본인 곡도 좋고, 다른 뮤지션의 곡도 좋습니다.
“7월의 유럽 투어 공연을 위해 인천에서 비엔나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 있습니다. 어둑어둑한 비행기 안에서 천천히 보내주신 질문지에 답을 작성해봤습니다. 수상한 음식이 데워지는 냄새가 퍼져가고 있네요. 비행기를 타기 전, 바로 어젯밤, 저에게 예전에 레슨을 받은 적이 있는 동료 음악가 서스 룸(Seo’s Room) 님께서, 곧 발매될 그분의 신보를 저에게 미리 보내주었습니다. 저를 정말 많이 좋아해 주는,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저에게 무지막지하게 긴 메시지만을 보내는, 그야말로 사랑이 흘러넘치는 레슨생인데요, 이분의 음악은 이분의 사랑을 참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서스 룸의 ‘촛대’를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