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섭의 AI 진테제] 미 정부가 끈 세계최강 AI…한국 대안은

[지디넷코리아]안광섭 세종대 겸임교수


1999년 가을, 애플의 파워 매킨토시 G4가 미국 수출관리법상 ‘무기’로 분류됐다. 초당 10억 회 부동소수점 연산을 돌파한 것이 냉전 시대 기준선에 걸린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를 마케팅으로 뒤집었다. 탱크가 컴퓨터를 에워싸는 광고(를 만들고, 마지막 멘트로 “경쟁사 PC에 대해서는, 뭐, 해로울 게 없죠”를 붙였다. 클린턴 행정부가 이미 기준 상향을 예정해 둔 상태였고, 수출통제는 수개월 만에 풀렸다.

이로부터 27년이 지난 지난주 금요일, 비슷하면서도 본질적으로 다른 일이 벌어졌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앤트로픽(Anthropic) CEO에게 서한 한 통을 보냈고, 수시간 뒤 세계 최강 AI 모델 ‘페이블 5(Fable 5)’가 전 세계에서 동시에 꺼졌다. 해제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수출통제의 대상이 원자(반도체)에서 비트(AI 모델)로 옮겨간 것이다.

1999년 가을, 애플의 파워 매킨토시 G4가 미국 수출관리법상 '무기'로 분류되자 애플이 맥G4의 기능을 강조하며 탱크를 넣어 만든 광고.
위 사진속 애플 파워맥 G4 컴퓨터.

6월 9일, 앤트로픽은 자사 최강 모델인 페이블 5와 미소스 5(Mythos 5)를 공개했다. 페이블 5는 미소스 계열의 프론티어 모델을 일반 사용자에게 처음 공개한 버전으로, 사이버보안 등 고위험 영역에서는 응답을 제한하는 보호장치를 탑재했다. 보호장치 일부가 해제된 미소스 5는 검증된 소수 기관에만 제공했다.

출시 3일 뒤인 6월 12일 오후 5시 21분(미 동부시간), 러트닉 상무장관의 서한이 도착했다. 페이블 5와 미소스 5에 대한 모든 외국인의 접근을 즉시 차단하라는 내용이었다. 미국 내 거주 여부와 무관하게, 앤트로픽 소속 외국 국적 직원까지 포함하는 조치였다. 앤트로픽은 실시간으로 사용자의 국적을 검증할 수 없었고, 유일한 선택지는 전 세계 모든 사용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금요일 아침까지 수억 명이 쓸 수 있었던 모델이, 금요일 밤에는 아무도 쓸 수 없게 됐다.

앤트로픽은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정부가 근거로 제시한 탈옥(Jailbreak, AI 보호장치를 우회하는 기법) 방법은 이미 오픈AI의 GPT-5.5를 포함한 다른 공개 모델에서도 작동하는 수준의 취약점이라는 것이었다. 출시 전 미국 정부와 영국 AI 안전연구소(UK AISI) 등이 수천 시간의 레드팀(Red Team, 보호장치 돌파를 시도하는 보안 테스트) 테스트를 수행했고, 보호장치를 전면 무력화하는 범용 탈옥은 발견되지 않았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법적 지침인 이상 따를 수밖에 없었다. 페이블 5 API 위에 서비스를 구축했던 기업들은 하룻밤 사이에 인프라 전환을 강제당한 셈이다.

보안 연구원 피터 거너스(Peter Girnus)는 이 상황의 아이러니를 짚었다. “자기 제품을 보도자료마다 군수품이라 묘사하면, 결국 정부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앤트로픽이 미소스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보호장치의 필요성을 역설할수록, 정부 입장에서는 보호장치가 뚫렸다는 보고에 즉각 반응할 근거가 쌓였다. 미국 정부가 실시간 배포 중인 상용 AI 모델에 수출통제를 적용해 강제 중단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9년 G4와 2026년 페이블 5의 차이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통제 속도다. 1999년에는 수출 심사에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렸다. 2026년에는 서한 도착 후 수시간 만에 전 세계 동시 차단이 이뤄졌다. 하드웨어는 국경에서 막지만, 소프트웨어는 API 한 줄로 막는다.

둘째, 통제 성격이다. 1999년은 냉전 시대 기준선에 우연히 걸린 과도기의 산물이었다. 기준 상향이 이미 예정돼 있었고, 잡스에게는 로비와 마케팅을 동시에 굴릴 여유가 있었다. 2026년은 의도적이고 표적화된 조치다. 상무장관이 직접 서한을 보냈고, 미 행정부는 국가안보 체계가 강화될 때까지 모델을 잠가둬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통제 범위다. G4는 중국 본토 등 특정 국가로의 수출이 제한됐다. 페이블 5는 전 세계 모든 외국인이 대상이다. 자사 외국 국적 직원까지 포함돼, 실질적으로 미국 시민권자만 접근 가능한 모델이 됐다.

반도체는 물리적 수출을 막았지만, AI 모델은 원격으로 ‘꺼버렸다’. 통제의 대상이 원자에서 비트로, 국경에서 API로 옮겨간 것이다.

이 사건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 것은 유럽이었다. 영국의 톰 투겐핫(Tom Tugendhat) 전 안보장관은 “주권은 이제 대포가 아니라 코드의 문제입니다”라고 했다. 프랑스 국민연합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Jordan Bardella)는 AI가 국가 주권의 핵심 문제라며, 자국 모델을 빠르게 개발하지 않는 나라는 다른 나라의 선택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소버린 AI(Sovereign AI, 국가가 자체 인프라와 모델로 AI 주권을 확보하는 역량)는 이미 거대한 흐름이었다. 엔비디아(NVIDIA)의 2026 회계연도 소버린 AI 매출은 300억 달러를 넘어서며 전년 대비 3배 이상 성장했다. 가트너(Gartner)에 따르면 전 세계 소버린 클라우드 IaaS 지출은 2026년 8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반복해온 “모든 국가는 소버린 AI가 필요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실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페이블 5 사태는 이 흐름에 결정적 명분을 더했다. 소버린 AI를 주장해온 이들에게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 사례가 생긴 것이다. 호주의 법률 AI 기업 이사쿠스(Isaacus)는 사태 직후 에어갭(Air Gap, 외부 네트워크와 물리적으로 격리하는 보안 방식) 셀프호스팅 전략을 더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이 선례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면 어떤 그림이 가능할까. 동맹국에는 페이블 5급 접근을 허용하고, 비동맹국에는 이전 세대 모델까지만 허용하는 등급별 접근권 외교다. 반도체 수출통제에서 이미 이 패턴을 봤다. TSMC의 최첨단 공정은 미국 동맹국에만 허용되고, 중국에는 세대가 뒤처진 칩만 갈 수 있게 한 것처럼, AI 모델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AI 모델이 외교 카드가 되는 것이다.

한국도 이 구도에서 자유롭지 않다. 전 세계 가용 컴퓨팅의 3분의 2 이상을 미국 하이퍼스케일러가 장악한 구조에서 스케일 경쟁으로 승부하기는 어렵다. 페이블 5 사태 이틀 전인 6월 10일, 네이버클라우드가 국방산업발전대전에서 소버린 AI 기반 국방 전략을 공개한 것은 시의적절한 움직임이었다.

필자가 20년간 GTM(Go-To-Market, 제품의 시장 출시·확산 전략) 전략을 수립하며 배운 원칙이 하나 있다. 인프라 위에 비즈니스를 올릴 때, 그 인프라의 킬 스위치(Kill Switch)를 누가 쥐고 있는지가 전략의 첫 번째 질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클라우드 시대에 이 질문은 “어떤 클라우드를 쓰느냐”였다. AI 시대에는 “어떤 모델 위에 서비스를 세우느냐”로 바뀌었다. 페이블 5 사태가 보여준 것은, 그 모델의 킬 스위치가 한 나라 정부의 서한 한 통에 달려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모든 에이전트에게 자기만의 컴퓨터가 필요합니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필자는 한 발 더 나가고 싶다. 에이전트에게 자기만의 컴퓨터가 필요하다면, 그 컴퓨터 위에서 돌아가는 모델의 주권도 필요하다. 자기만의 컴퓨터를 가져도, 그 위에서 돌아가는 두뇌가 다른 나라 정부의 판단 하나로 꺼질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자기 것’이 아니다.

필자는 소버린 AI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그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소버린 AI의 핵심은 ‘최고 모델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내가 쓰는 AI가 내일도 켜져 있다는 보장을 확보하는 것’이다. 멀티 모델 전략, 에어갭 배포, 오픈소스 대안 확보. 이것들이 이제 기술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비즈니스 연속성의 문제가 됐다.

투자 관점에서도 주목할 대목이 있다. 소버린 AI를 추구하는 나라가 늘어날수록, 각국이 자체 모델을 학습하고 운영할 인프라를 확보해야 한다. 지금까지 프론티어급 파운데이션 모델 학습에 본격적으로 나선 곳은 미국과 중국 정도였다. G20 국가들이 같은 경쟁에 뛰어든다면, GPU 수요의 천장은 한층 더 높아진다. 엔비디아 소버린 AI 매출이 1년 만에 3배로 뛴 것은 초기 신호에 불과하다. 페이블 5 사태는 이 곡선을 더 가파르게 만들 것이다.

1999년, 초당 10억 회 연산을 돌파한 컴퓨터가 무기로 분류됐다. 수개월 만에 풀렸고, 애플은 그것을 광고로 만들었다. 2026년, 세계 최강 AI 모델이 출시 3일 만에 수출통제 대상이 됐다. 아직 풀리지 않았고, 누구도 웃지 못하고 있다.

AI 모델이 더 이상 일반 소프트웨어 제품이 아니라 반도체와 같은 전략 자산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전략 자산에는 반드시 주권 문제가 따라온다. 프론티어 AI 모델 위에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면, 한 가지만 점검해 보자. “내가 쓰는 모델이 내일 꺼진다면, 우리 서비스는 어떻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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