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작가' 이민주, 악몽 '털북숭이 설인'과 조용한 반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내성적이고 털이 많고 얼굴이 없다고 흉한 건 아니잖아요?”

북실북실 ‘이미주 설인’의 조용한 반란이 시작됐다.

19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서정아트 서울에서 개인전을 연 ‘MZ작가’ 이미주(42) 전시는 일단 캐릭터의 귀여움으로 눈길을 끈다. 일상 풍경을 일러스트처럼 트렌디하게 풀어내는 ‘요즘 작가’들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겼다.

‘탐구생활: 숨겨진 실타래’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낸 조각과 회화 작품은 이중적이다. 내면과 외면, 물 위 와 아래, 극과 극 심리전이 공존하면서도 위트와 흥미로 치장 되어 재미를 선사한다. 어디서 본 듯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매력이 있다.

북실북실 붓맛과 물감 맛이 살아있는 털북숭이 같은 ‘얼굴 없는 캐릭터’는 ‘설인’으로 불린다. 아직은 수줍음이 있는 캐릭터로 그림 속에서 나와 캔버스 뒤에 숨어 있거나, 바닥에 뒤돌아 앉아 내면 감정을 이끈다.

특히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물 속을 걷고 있는 ‘설인’은 이번 전시에 처음 당당하게 모습을 보여 존재감을 과시한다.

몬스터같은 ‘설인’의 탄생 배경도 재미있다. “지금은 메이트와 같은 존재지만 고교 시절 전생 체험을 하다 만난 ‘무섭고 부끄러운 무언가’였다.”

“어릴 적 꿈을 많이 꿨어요. 어느 날 선생님이 전생 체험을 하려면 18세 나이 만큼 계단을 내려가서 문을 탁 열면 ‘0살 이전의 삶’이 있다며 뭐가 있는지 보라고 하더라고요. 꿈을 꿨고, 그렇게 내려가 흙 바닥을 보고 무언가 손을 잡았는데 털이 엄청 많이 나 있었어요. 너무 괴기스러워서 눈을 번쩍 떠 꿈에서 깨어났어요. 이후 친구들이 너는 뭐였어?라고 물었는데 털 난 게 부끄러워서 말을 못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꿈을 꾸면 악몽처럼 털이 등장했다. 사춘기에 수치스럽다는 생각에 눌린 채로 있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꿈을 꾸게 되고 ‘그런 존재’가 구석에 있으면서 위협하고 공포스러웠다.

악몽으로 오랜 기간 남아 있던 ‘그 존재’는 막상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니 달라졌다. “이런 게 내 안의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다. “소극적이고 나의 감추고 싶은 모습이 응축된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작가는 “계속 놓아두면 부끄러운 존재로 남아있을 것 같다”며 이 존재를 끄집어냈다.

그림을 그리게 된 2011년부터 주물 주물 손으로 작은 도자기로 ‘털 인물’을 만들다가 점점점 커졌다.

“내성적이고 어딘가에서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닌 것 같은 인물인데, 만들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의외로 친근하게 생각하더라고요. 회색의 털로 뒤덮여 얼굴도 없고 아직도 내성적인 ‘설인’은 이제 제 세계의 메이트가 됐어요.”

‘설인’과 함께하면서 작가도 용감해졌다. 소극적으로 귀퉁이에 나타나던 ‘설인’이 커지고 입체화되면서 이민주도 작가로서 새로운 도약을 맞이했다.

이민주 작가는 홍익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디자인 회사를 다니다 2년 만에 그만뒀다. 친구가 있는 스페인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그린 그림을 전시하게 되면서 미술 공부를 다시 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예술대학 EINA Centre Universitari de Disseny i Art de Barcelona 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창작 커뮤니케이션 석사 과정을 마쳤다. 스페인 마드리드 콜렉시온 솔로 미술관 Colección SOLO, Spain 및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작가를 하면서 다른 직업에 미련이 없을 정도로 행복하게 작업하고 있다”는 작가는 “‘식물의 화가’ 조너스 우드와 일상을 재치 있게 표현하는 데이비드 슈리글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전시장 1층 작업들은 저의 여정이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설인’이 회화에 전면으로 나선 것도 처음입니다. 이제 걷기 시작하는 ‘설인’처럼 이번 전시는 정적인 순간을 벗고 다양한 이야기가 피어나는 작품입니다. 화면에 담고 싶은 찌글찌글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요. 계속 꾸준하게 작업하고 싶어요.” 전시는 4월30일까지. 관람은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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