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박미선 기자 =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을 강하게 비판하며 “이란은 결코 고개를 숙이거나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핵무기 개발 의사는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평화적 목적의 핵기술에 대한 제한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23일(현지 시간) CNN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1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거론하며 “제재와 압박, 괴롭힘이 강화될수록 이란 국민의 저항은 더욱 강해질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힘이 없는 세계는 위험하지만 전쟁과 괴롭힘의 언어만 이해하는 세계 역시 안전하지 않다”며 “군사력이 정당성을 대신하고, 테러가 정치와 협상을 대신하며, 전쟁이 대화와 외교를 대신하는 세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연설 초반부터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발생한 민간인 피해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그는 전쟁 과정에서 숨진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와 전쟁 첫날 학교 폭격으로 희생된 어린 학생들의 사진을 들어 보이며 “미국 대통령은 우리를 테러리스트라고 표현했지만 우리는 테러의 희생자였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을 방어했을 뿐이다.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며 “무고한 국민들이 비겁한 공격과 침략의 표적이 됐고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스스로를 방어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우리를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CNN에 따르면 지난 2월28일 전쟁 첫날 이란 남부 미나브의 한 초등학교가 폭격을 받아 156명이 숨졌다. 이란 당국은 사망자 가운데 어린이 최소 120명과 교사 26명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같은 날 발생한 체육관 공격도 언급하며 “미국은 다탄두 무기를 사용해 체육관을 공격했다”며 “우리의 과학자들과 남성, 여성,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아무런 범죄도, 죄도 저지르지 않은 무고한 아이들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을 향해 “그들은 우리를 공격했지만 우리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민간인 희생을 거론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판하자 회의장에 있던 유일한 미국 대표는 연설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했다.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가 없다고 재차 강조하면서도 평화적 핵기술에 대한 제한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우리는 무기로 사회를 위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발전을 위해 핵기술을 추구한다”며 “평화적 핵기술은 우리나라 발전의 일부”라고 말했다.
이어 “이란은 핵기술이 소수의 독점적 소유물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본래 우리에게 있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명히 말한다. 핵무기는 안 되지만 평화적 핵기술에는 제한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미국의 봉쇄 조치도 비판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일부가 수로를 자유롭게 이용해 이익을 얻으면서 동시에 그 수로를 이용해 우리를 공격하고 우리 자신의 수로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며 “그들은 우리 자신의 수로에 대한 접근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CNN에 따르면 통상 전 세계 원유의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의 선박 통행량은 지난 2월 전쟁이 시작된 이후 크게 감소했다. 미국은 잠정 휴전이 무산된 뒤 지난 7월 이란 항구에 대한 군사 봉쇄를 재개했다. 미 중부사령부는 최근 봉쇄 조치 이행을 위해 상선 110척의 항로를 변경시켰다고 밝혔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란의 군사력 역시 방어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란은 위협받지 않고 미래가 위협받지 않기 위해 강력해야 한다”며 “누구도 이란 도시를 폭격하고도 대응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방어 체계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은 열어뒀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연설 막바지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우리를 괴롭히려는 사람들은 우리가 힘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대화와 외교, 협상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란은 세계를 향해 손을 내민다”며 “이는 약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힘과 굳건함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협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지역에서는 어느 누구도 혼자서 안보를 누릴 수 없다”며 “우리가 함께 안보를 구축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함께 불안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설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유엔총회에서 이란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합의가 조만간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란을 ‘말살(annihilate)’할 수 있다고 경고한 지 하루 만에 나왔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와 재러드 쿠슈너가 유엔총회를 계기로 이란 당국자들과 약 3시간 동안 만났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매우 좋은 회담”이라고 평가했지만 구체적인 논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란 측은 카타르 중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뤄진 이번 접촉의 의미를 축소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미국이 이란 항구에 대한 봉쇄를 해제하고 동결된 이란 자산을 풀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이번 접촉에 대해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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