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잡을 카드 맞나”…대형마트 새벽배송에 상인·노동계 우려

[지디넷코리아]

정부가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자 중소상공인과 노동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이미 쿠팡이 온라인 유통시장을 선점한 만큼, 새벽배송 허용이 쿠팡 견제나 대형마트의 실적 반등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대형마트가 전국 점포를 물류 거점으로 활용해 근거리 배송을 확대하면 동네 마트 같은 골목상권 수요를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인력이 줄어든 대형마트에서 상품 선별·포장과 심야근무가 기존 노동자에게 추가로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11일 국회에서 열린 ‘대형마트 새벽배송, 누구를 위한 규제 완화인가’ 토론회에서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더라도 쿠팡의 시장 지배력을 낮추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대형마트 새벽배송, 누구를 위한 규제완화인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이날 우원식 전 국회의장은 인사말을 통해 “새벽배송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의 출발점은 온라인 유통·물류 현장에서 잇따라 발생한 과도한 심야노동과 과로사의 비극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였다”며 “온라인 플랫폼 중심의 과열된 심야배송 경쟁을 바로잡기보다 오히려 오프라인 현장으로 그 경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송관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쿠팡 배송노동자의 과로 문제에서 시작된 논의가 대형마트의 새벽배송과 의무휴업 규제 완화로 이어진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송 연구위원은 “쿠팡의 과로사 문제에서 시작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야간 배송을 규제하는 방안을 논의했는데, 갑자기 쿠팡의 독점적 지위와 대형마트 역차별이 등장하면서 영업시간과 의무휴업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대형마트가 현행법상 새벽배송을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라고 짚었다. 별도의 물류센터를 이용하면 가능하지만, 대형마트들이 기존 도심 점포를 배송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원식 전 국회의장이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대형마트 새벽배송, 누구를 위한 규제완화인가’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그는 “대형마트는 외부에 풀필먼트센터를 지어 새벽배송을 할 수 있고 실제로 온라인 배송도 하고 있다”면서 “그런데도 유통산업발전법을 바꾸려는 핵심은 기존 점포를 마이크로 풀필먼트센터로 활용하려는 데 있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어 “마트가 물류 거점으로 바뀌면 점포 안에서 누군가는 상품을 고르고 포장해 배송기사에게 넘겨야 한다”며 “새로운 인력을 뽑기보다는 현재 퀵커머스 업무처럼 기존 노동자에게 일을 더 맡길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유병국 인천대학교 교수는 대형마트가 새벽배송에 나서도 쿠팡과 네이버가 확보한 이용자를 단기간에 가져오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온라인 유통시장은 한번 시장을 선점한 사업자가 영향력을 계속 확대하는 승자독식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에서다.

유 교수는 “대형마트가 새벽배송을 한다고 해서 쿠팡과 네이버가 확보한 고객을 얼마나 가져올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약 1800개 점포를 물류센터처럼 활용해 1~3시간 배송에 나서면 동네마트와 골목상권을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대형마트의 부진을 새벽배송 규제 탓으로만 돌리기도 어렵다고 봤다. 과도한 출점과 업체 간 경쟁, 다이소·올리브영·무신사 등 전문점의 성장에 따른 비식품 경쟁력 약화, 온라인 사업 실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유 교수는 “새벽배송을 허용한다고 대형마트의 온라인 경쟁력이 갑자기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며 “자본력과 점포망을 갖춘 대형마트에는 온라인 영업 기회를 열어주면서 디지털 전환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영세 소매업체를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차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상인·노동계는 대형마트의 규제를 풀기보다 온라인 플랫폼의 심야배송을 규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대형마트 새벽배송, 누구를 위한 규제완화인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박용만 한국마트협회장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창고형 할인점, 복합쇼핑몰에 이어 온라인 플랫폼까지 유통시장 전반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중소마트의 입지가 좁아졌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온라인은 쿠팡이 장악하고 있고 오프라인에서는 대형 유통업체가 영향력을 넓히는 상황에서 새벽배송까지 풀어주면 중소 유통업체는 더 버티기 어려워진다”며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할 것이 아니라 쿠팡도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배송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인력 감축이 이어지는 가운데 퀵커머스와 새벽배송 업무까지 추가되면 노동 강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승훈 마트산업노조 부위원장은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의 고용 인원은 10년 사이 1만명 이상 줄었지만,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2020년 411건에서 2023년 611건으로 증가했다”며 “줄어든 인력이 기존 업무와 온라인 주문의 피킹·패킹, 배송 준비까지 떠안으면서 노동 강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신 부위원장은 새벽배송의 실적 기여도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SSG닷컴의 연간 거래액 약 6조원 가운데 새벽배송 비중은 8%에 불과하고 롯데도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2022년 새벽배송을 중단했다”면서 “새벽배송을 허용한다고 대형마트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경쟁력 문제가 해결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벽배송 허용에서 영업시간 확대,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을 거쳐 결국 의무휴업 제도 폐지로 규제 완화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온라인에 규제가 없으니 오프라인 규제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무분별한 심야배송 경쟁부터 노동자의 건강권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대형마트 새벽배송, 누구를 위한 규제완화인가’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지디넷코리아)

정부는 아직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는 단계라며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추가로 수렴하겠다는 입장이다.

조근상 산업통상부 유통물류과장은 “특정 기업을 옹호하거나 특정 기업에 혜택을 주기 위해 제도를 만들어가는 것은 아니다”며 “온라인 시장에서도 경쟁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효율화할 부분이 있는지 고민하는 단계”라고 답했다. 이어 “대·중소 유통업체의 상생을 포함해 지속 가능한 유통산업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소상공인과 중소 유통업계에 대한 의견 수렴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김현동 중기부 과장은 “중소 유통업계의 의견을 수렴하려 노력했지만 오늘 지적처럼 미흡한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특정 소상공인이나 중소 유통업계를 배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중소 유통업계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중기부의 역할”이라며 “앞으로 현장과 더 잘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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