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AP/뉴시스]이재준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정권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해온 야권 정치인 보리스 나데즈딘(63)이 러시아를 떠났다.
나데즈딘은 3일(현지시간) 텔레그램에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 서 있는 영상을 공개하며 러시아에서 출국했다고 밝혔다.
그는 영상에서 “좋은 소식은 내가 살아 있고 자유롭다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당분간 러시아에 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데즈딘은 이어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 둘러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출국은 러시아 당국이 그를 의회 선거에 나서지 못하도록 배제한 뒤 이뤄졌다.
나데즈딘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2024년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도전하려 했다.
러시아 법원은 7월 나데즈딘에게 ‘극단주의 상징물 표시’ 혐의로 13달러 벌금형을 언도했다. 그는 해당 혐의를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문제가 된 혐의는 2023년 온라인 영상에서 비롯됐다. 당시 영상에는 사망한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사진이 잠시 등장했다. 나발니는 러시아 당국에 의해 극단주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정치적 박해를 받았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나데즈딘은 지난달 러시아 법무부로부터 ‘외국 대리인’으로도 지정됐다. 러시아에서 외국 대리인 지정은 정부의 추가 감시 대상이 되는 동시에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는 조치다.
이런 처분들로 나데즈딘은 9월 하원 선거 출마 자격을 잃었다. 하원 선거는 크렘린이 강력하게 통제한 가운데 치러질 전망이다.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은 하원에서 지배력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경쟁 상대는 공산당과 일부 정당이지만 주요 현안에서는 크렘린과 같은 방향으로 표결하는 경우가 많다.
선거를 앞두고 러시아 내부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이 커지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연료 부족과 경제적 부담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당국은 상징적인 수준의 반대 목소리조차 일절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기 퍼지고 있다.
나데즈딘은 2024년 1월 대선 출마를 위해 수천 명의 서명을 확보했다. 그는 당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러시아 대법원은 2024년 3월 대선 투표용지에 나데즈진의 이름을 올리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나데즈딘 선거운동 측이 제출한 9000여명의 서명이 무효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당시 대선에서 형식적인 경쟁자만 상대해 당선하면서 손쉽게 5번째 임기를 확보했다.
나데즈딘은 베테랑 정치인이다. 그는 1990년대 러시아 정부에서 근무하며 당시 세르게이 키리옌코 총리의 보좌역을 맡았다. 키리옌코는 현재 푸틴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후 의원을 지냈고 최근에는 지방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러시아 내에 남아 있던 몇명 안 되는 저명한 푸틴 비판 인사로 꼽혔다.
나데즈딘은 올해 초 하원인 국가두마 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다. 러시아 법무부가 자신을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한 뒤에도 상징적인 정치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또 다른 압박이 뒤따랐다. 경찰은 나데즈딘을 일시 구금하고 ‘극단주의 상징물 표시’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그간 해외 이주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러시아 출국이 금지된 상태였다.
이번 공개한 영상에서는 출국 금지가 해제됐는지, 아니면 금지 상태에서 출국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러시아 당국은 2022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을 시작한 이래 반대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인권단체와 독립 언론, 시민사회 단체 구성원, 크렘린 비판 인사들이 지속적으로 표적이 됐으며 현재 수백명이 수감되고 수천명은 러시아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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