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디넷코리아]
“폭스바겐의 현재 사업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임직원에게 보낸 내부 메시지에서 내린 진단이다. 유럽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세계 시장에 수출하며 성장해 온 기존 방식으로는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와 높은 생산 비용, 미국의 관세 장벽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는 의미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수요 둔화와 중국 완성차 업체의 약진, 보호무역 확산으로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경쟁 질서가 흔들리면서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공장과 인력, 차종을 줄이고 인공지능(AI)·로봇 중심의 생산체제로 전환하는 생존 경쟁에 돌입했다.

과거 자동차산업의 노사 갈등이 임금과 성과급을 둘러싼 줄다리기였다면 이제는 공장 폐쇄와 구조조정, 자동화, 생산 거점 재편 등 기업의 미래 전략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비용을 낮추고 전환 속도를 높이려는 완성차 업체와 일자리와 고용 안정을 지키려는 노조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폭스바겐은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직면한 구조조정 압박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다. 블루메 CEO는 기존 감축 계획에 더해 전 세계에서 최대 5만명을 추가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계획이 모두 현실화하면 전체 감축 규모가 최대 10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
폭스바겐은 차량 라인업을 최대 절반으로 줄이고 유럽 생산능력을 약 50만대 축소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블루메 CEO는 회사의 간접비가 경쟁사보다 약 20% 높고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인건비에서 발생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독일 공장 4곳 폐쇄와 추가 인력 감축안은 노동자 대표가 절반을 차지하는 감독이사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노동계 측 이사들은 경영 실패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반면 현대자동차는 미래차 전환 과정에서 AI와 로봇 도입, 고용 안정 문제가 새로운 노사 협상 의제로 떠올랐다.
현대차그룹은 제조 AI와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생산 현장에 도입하는 등 자동화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노조는 AI와 로봇 기술을 생산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고용 안정 방안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논의는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서도 불거지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교섭 결렬에 따라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주간조와 야간조가 각각 하루 2시간씩 작업을 중단하며, 15일에는 전국금속노동조합 총파업에도 참여한다.
회사는 기본급 8만9천원 인상과 성과금 350%에 1천만원, 자사주 15주 지급 등을 담은 3차 제시안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조는 기본급 14만9천600원 인상과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정년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사는 지난 8일 교섭에서 ‘미래지향적 선진 임금체계 개선 방안’을 공동 연구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현대차는 기술직(생산직) 임금체계는 이미 2012년 시급제에서 월급제로 전환됐으며, 이번 합의는 완전월급제 도입이 아니라 노사 공동 TFT를 통한 임금체계 개선 방안 연구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전미자동차노조(UAW) 집행부를 둘러싼 권한 남용 의혹이 불거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 미국 법무부가 숀 페인 UAW 위원장의 권한 남용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법원 선임 독립감시인은 페인 위원장이 이에 반대한 리치 보이어 부위원장에게 보복성 조치를 했다고 판단했다.
페인 위원장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UAW 자체에는 소환장이 발부되지 않았으며 법무부도 수사 내용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이번 사안은 차기 UAW 위원장 선거와도 맞물려 있다. 페인 위원장과 보이어 부위원장은 모두 차기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상태다.
폭스바겐은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현대차는 AI·로봇 도입과 고용 문제가, GM 등 미국 완성차 업체는 UAW 집행부를 둘러싼 리더십 불확실성이 각각 새로운 경영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임금과 성과급이 노사 협상의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AI·로봇 도입과 미래 생산체제, 고용 안정 문제가 함께 논의되고 있다”며 “결국 협상은 처우 개선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지만 앞으로는 미래차 전환 과정에서 고용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도 계속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