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뉴시스] 문영호 기자 = 국가유산청이 지난달 26일 화성 용주사 천보루를 국가 보물로 지정했다. 궁궐의 건축요소를 담으면서도 사찰의 권위를 건축학적으로 표현하며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독특한 구조라는 점, 사도세자 능침천장(묘 이전) 등 정조대왕의 효와 왕실 원찰로서의 역사성을 간직한 건물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10일 기자가 찾은 화성시 송산동 화산에 자리잡은 용주사. 여느 가람과는 달리 일주문을 대신해 붉은 살을 세운 홍살문이 기자를 맞았다.
홍살문은 왕릉이나 궁궐, 관아 등에 세워 그곳이 신성하고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장소임을 알리는 표지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유일하게 이곳 용주사에만 홍살문이 서 있다.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강력한 왕권으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호하고 명복을 빌기 위해 용주사를 창건, 이곳에 효성전을 건립해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다.
홍살문과 삼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사리탑 너머로 독특한 누각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좌우로 길게 이어진 객사 같으면서도 중앙부 5칸이 앞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어 성벽 망루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최근 국가 보물로 지정된 ‘천보루’다.
천보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누각이다. 돌출된 측면 1칸을 제외하고 나머지 2칸은 양 옆으로 좌우 대칭의 요사채(행랑)와 이어져 마치 뒤편 대웅보전을 보호하는 건물 날개처럼 보인다. 천보루 동쪽 요사채는 과거 정조대왕 행차시 스님들이 사용하던 곳이고, 서쪽은 원행에 나선 신하들이 숙박하던 곳이다. 양 요사채의 대칭구조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궁궐양식이다.
천보루 밑은 벽이나 문을 두지 않은 통로다. 누각 아래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시야가 트이며 대웅보전 마당이 열린다. 천보루 아래에서 대웅보전을 바라보면 법당이 마치 액자 속 풍경처럼 기둥 사이로 들어온다. 천보루가 용주사의 중심, 대웅전으로 들어서는 경계라는 게 실감되는 순간이다.
이 경계 중앙에는 임금만이 오를 수 있는 어계(御階)가 있다. 정면에서는 분명 2층 누각의 위엄으로 들어서 있는 천보루지만 어계를 올라 대웅보전 마당으로 들어서서 뒤돌아보면 누각은 단층으로 내려 앉아 있다. 왕실사찰, 정조대왕의 위엄도 불심 앞에서는 한없이 낮아진 모습이다. 누각 현판도 바뀌었다. 밖에서는 ‘천보루’, 하늘이 보호한다는 뜻을 담았던 현판이 안에서는 ‘홍제루’, 널리 백성을 구제한다는 현액이 됐다.
천보루가 세워진 것은 1790년이다.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화산으로 옮기고 그 능을 수호하고 제향을 올리기 위한 원찰로 용주사를 창건했다. 용주사가 효찰대본산인 이유다. 왕이 행차하는 사찰이었던 만큼 건축 구성도 일반 사찰과 달랐다. 홍살문과 궁궐식 배치 양식을 보이는 천보루 등은 이런 왕실 사찰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천보루 아래를 지나면 왕의 사찰은 곧 부처의 도량으로 이어진다. 230여년 전 정조대왕이 그랬듯 감히 어계를 올라본다. 불심에 기대 부모의 극락왕생을 빌며 만인지상의 지위를 내려놓는 정조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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