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유희석 기자 =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바다 위 주차장으로 변했다.
중동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 뿐 아니라 납사(나프타)와 헬륨 등 주요 산업 원료의 수급 차질이 현실화하고 있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해상 통로다.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가 이 해협을 통해 이동한다.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우회 송유관을 통해 일부 물량을 대체할 수 있다.
다만 우회 공급 능력은 하루 500만~600만 배럴 수준에 불과해 전체 물동량을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정유업계는 원유 도입 차질 가능성을 가장 큰 리스크로 보고 있다.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를 해외에서 들여와 정제해 제품을 생산하는 구조다.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원유 도입 일정이 지연되면서 공장 가동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초 배럴당 50~60달러대에 거래되던 UAE산 무르반 원유 선물 가격은 이달 현재 95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사태가 길어지면, 무르반 원유 선물 가격이 조만간 100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국내 정유업계는 생산 물량의 절반 이상을 수출하지만 원유 도입이 불안해지면 정제 가동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정부가 비축유 방출이나 대체 도입선 확보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동발 공급 차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석유화학 업계의 부담도 확대되고 있다.
전쟁 발발 이후 석유화학의 주요 원료로 불리는 납사 가격은 약 20%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납사는 에틸렌 등 석유화학 기초제품 생산에 사용되는 핵심 원료로, 이미 일부 업체에서는 공급 차질이 현실화하고 있다.
전남 여수의 여천NCC는 지난 4일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로 중동산 납사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자 일부 고객사에 제품 공급 계약 이행이 지연되거나 조정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여천NCC는 외부 요인으로 계약 이행이 어려울 경우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는 불가항력(포스마주르)을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납사 조달 차질이 이어지면 생산설비 가동률도 하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은 납사 상당량을 중동 지역에서 조달하고 있어 공급 차질이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쟁 상황이 장기화하면 납사 수급 불안이 다른 석유화학 업체로도 확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카타르 국영 에너지 기업도 포스마주르를 선언하면서 천연가스 기반 산업용 가스 공급에도 불안 요인이 커지고 있다.
세계 헬륨 생산의 약 30%를 차지하는 카타르 공급이 위축되면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헬륨 가격이 최대 50%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재고를 고려하면 단기 대응은 가능하지만 지금과 같은 공급 차질이 이어지면 1~2개월 안에 가동률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며 “정기보수 일정 조정 등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대체 조달처를 확보하지 못하면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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