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5분 만에 소장 쓰는 시대”…법조계 시간당 과금 저문다

[지디넷코리아]

“생성형 인공지능(AI) 덕분에 소장 초안 작성도 단 5분이면 충분합니다. 법조계의 시간당 과금 모델은 결국 사라질 겁니다.”

AI가 계약서 검토, 소장 작성, 법률 의견서 초안을 수 분 내 완성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법조계의 수익 구조와 경쟁 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과거엔 방대한 판례 데이터와 내부 리서치 인력을 갖춘 대형 로펌이 구조적 우위를 점했다면, AI를 얼마나 정교하게 활용하느냐가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강민구 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는 5일 지디넷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사법 영역에서 AI 도입은 재판 지연 해소와 판결 품질 향상을 위한 시대적 소명이자 필연적 진화”라고 밝혔다. 36년간 법관으로 재직하며 전자소송과 전자법정 도입을 이끌었던 그는 최근 사법 AI 확산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설파하고 있다.

강민구 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 (사진=본인 제공)

그가 지난 2024년 정년 퇴임 직전 대법원장 공관에서 약 20분간 스마트폰으로 AI 시연을 펼친 일화는 법원 내부 AI 도입 논의를 촉발한 계기로 회자된다. ‘망치를 든 AI 계몽주의자’로 불리는 강 변호사는 대통령실과 국회, 전국 법원과 지자체를 돌며 AI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기술을 두려워하거나 외면하기보다 직접 쥐어보고 두드려보며 제도 안으로 들여와야 한다는 게 강 변호사의 지론이다.

지디넷코리아는 ‘강민구 변호사에게 듣는 사법 AI 조건’ 인터뷰 기사를 2회에 걸쳐 게재한다.

최근 들어 법조계가 가장 크게 체감하는 변화는 ‘정보 비대칭의 붕괴’다. 과거엔 상위 대형 로펌이 수십 년간 축적해 온 판례 데이터, 내부 보고서, 해외 법률 자료 접근성이 곧 경쟁력이었다. 개인 변호사나 중소 규모 부티크 로펌은 물리적 인력과 자료 축적 면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했다.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강 변호사는 “대형 로펌이 크루즈 미사일(순항미사일)을 들고 개인 변호사는 M16 소총을 들고 싸우는 격이었다면, 이제 양쪽 모두 미사일을 들고 있는 셈”이라고 비유했다.

AI는 방대한 판례를 즉시 요약하고 해외 판례와 학술 자료까지 번역·정리해 준다. 특정 전문 분야를 오랫동안 다뤄온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적절한 프롬프트 설계만으로 단기간에 고도화된 리포트를 확보할 수 있다. 그는 “전문 영역의 장벽이 눈에 띄게 낮아지고 있다”며 “정보 접근성 측면에선 사실상 평등한 출발선이 형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변화는 법률 시장의 과금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계약서 초안 작성이나 의견서 리서치에 수십 시간이 소요되던 구조가 무너지면서 시간 중심 과금 체계는 설득력을 잃고 있다. 강 변호사는 “결과물 중심, 성과 중심 모델로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AI가 정보 접근성을 평등하게 만드는 동시에 또 다른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특히 법조계 내부 인력 구조와 교육 방식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강민구 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 (사진=본인 제공)

실제로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선 리서치와 초안 작성 업무가 AI로 대체되며 실무 경험을 쌓을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기존엔 신입 변호사들이 선배 변호사 밑에서 반복적인 검토와 수정 과정을 거치며 사건 감각을 익히는 도제식 교육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AI가 이 과정을 상당 부분 대신하게 되면 중간 단계 인력이 성장할 통로가 좁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강 변호사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을 인지하고 있다. 그는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라면서도 “저연차 변호사들의 훈련 구조를 재설계하지 않으면 법조계의 허리가 약화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AI는 능력을 평준화하는 동시에 경쟁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며 “연차가 아니라 문제 해결 능력과 사고력, AI 활용 역량이 변호사의 가치를 좌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법 AI 논의가 구체화될수록 강 변호사가 반복해서 강조한 것은 데이터다. 판결문은 AI 학습에 있어 가장 양질의 사법 데이터로 꼽힌다. 강 변호사는 “AI는 엔진이고, 판결문은 연료”라고 표현했다.

강민구 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 (사진=본인 제공)

충분한 연료가 공급되지 않으면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AI라도 실질적인 판단 보조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그는 국내 판결문 공개 범위가 제한적인 현실을 지적하며 “비실명화 기술을 전제로 공개 범위 확대 논의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데이터 공개의 전략적 위험성도 강조했다. 지금은 국내 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데이터 접근이 제한적이어서 글로벌 빅테크의 직접적인 공세가 없지만 데이터가 대규모로 개방되는 순간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강 변호사는 “작은 시장이라는 점이 일종의 보호막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AI 시장에서 법조계 데이터는 기회이면서 장벽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판결 데이터 관리 방식에 대해서도 “법원 통제 범위 안에서 운영되는 온프레미스(내부 구축형) 환경이나 프라이빗 클라우드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AI 도입이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법조인의 생존 조건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강 변호사는 후배 법조인들을 향해 독서와 글쓰기, 깊이 있는 토론을 통한 사고 훈련을 거듭 강조했다. AI가 제공하는 정보는 어디까지나 참고 자료일 뿐, 그 타당성과 한계를 검증하는 과정은 인간의 몫이라는 설명이다.

강 변호사는 “AI를 탓하는 건 아날로그 내공이 부족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며 “AI를 잘 활용하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앞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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