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리더스] 판결 주체는 누구인가…강민구 변호사가 말하는 사법 AI 조건

[지디넷코리아]

재판 지연과 판결문 작성 부담, 늘어나는 사건 수와 제한된 인력.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산업 전반을 재편하는 가운데 사법 영역 역시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기술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도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강민구 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는 4일 지디넷코리아와 서면 인터뷰에서 “사법 영역에서의 AI 도입은 재판 지연 해소와 판결 품질 향상을 위한 시대적 소명이자 필연적 진화”라고 밝혔다.

36년간 법관으로 재직하며 한국 전자소송의 기틀을 닦은 그는 대통령 직속 국가AI전략위원회의 전신인 국가AI위원회에서 법제도분과 위원장을 지냈다. 현재는 법무법인 도울과 디지털·AI 상록수 연구회를 이끌며 법조 AI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강민구 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 (사진=본인 제공)

강 변호사는 사법 AI 논의 출발점으로 재판 지연의 구조적 원인을 먼저 짚었다. 법조계에 따르면 한국의 판사 수는 인구 1만 6000명당 1명 수준이다. 그는 “법관들이 판결 결론 숙고에 10~20%의 에너지만 쓰는 반면, 판결 이유 작성엔 70~80%를 쏟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유 작성 부담을 줄여주면 법관이 판단 그 자체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판례·법령·학술 자료를 신속히 정리하는 시스템이 구축될 때 판결 품질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강 변호사는 “법관 1인당 여러 명의 AI 비서가 상시 대기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 홀로 소송이 증가하는 현실과 맞물려 생성형 AI 기반 법률 정보 서비스가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

기술 도입 논의가 확대될수록 사법의 본질에 관한 질문도 제기된다. AI가 판단 영역까지 개입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문제다. 강 변호사는 판결의 최종 책임은 어디까지나 인간 법관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강민구 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 (사진=본인 제공)

그는 “AI가 아무리 정교한 분석 결과를 제시하더라도 판결이란 최종 행위와 책임은 인간 법관에게 귀속돼야 한다”며 “AI가 재판의 주체로 설계되는 구조는 우리 헌법 체계와 충돌할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판사가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헌법과 법률, 확립된 판례, 직업적 양심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강 변호사는 “기술은 판단을 보조하는 수단일 뿐, 판단 자체를 대체하는 위치에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또 “AI가 특정 판례를 추천하거나 양형 범위를 제시할 경우 그 근거를 법관이 이해하고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며 설명가능성과 투명성을 필수 조건으로 제시했다.

활용 가능 영역에 대해선 비교적 구체적인 선을 그었다. 판례·법령·학설 검색과 요약, 판결문 초안 작성 지원, 양형 가이드라인 범위 산출, 법정 발언의 음성-텍스트 변환(STT), 반복 행정의 업무자동화(RPA), 재판 일정 관리 등은 수용 가능성이 높은 영역으로 봤다. 반면 AI가 직접 주문을 결정하는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에스토니아의 소액 사건 AI 판결 시도 사례를 두고 “민사 분쟁에서 사법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라면서도 인간 법관이 주문을 결정해야 한다는 사법의 본질을 침해하는 절대적 금기 영역으로 규정했다. 강 변호사는 “우리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고려하면 동일한 모델을 그대로 도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사법 AI 논의가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구체적 도입 전략과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강 변호사의 판단이다. 그는 판결문 작성 보조 기능을 갖춘 ‘판결 도우미 AI’를 우선 도입 과제로 제시했다. 업무 구조상 이유 작성에 과도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이 부분을 지원하는 시스템부터 정비하는 것이 합리적이란 설명이다.

강민구 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 (사진=본인 제공)

운영 방식으론 법원 내부 서버를 활용하는 온프레미스 환경을 원칙으로 제시했다. 강 변호사는 “사법 데이터는 민감성이 높기에 물리적으로 법원 통제 범위 안에서 관리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STT와 RPA 도입 역시 판결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영역으로 꼽았다.

AI가 판사의 판단에 무의식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른바 ‘닻 내리기 효과’ 우려도 짚었다. 강 변호사는 미국의 양형 계산 프로그램 ‘컴파스(COMPAS)’ 사례를 통해 “알고리즘이 제시한 재범 위험도 수치가 실제 양형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COMPAS는 피고인의 재범 위험성을 수치화해 제공하는 AI 도구다. 알고리즘이 제시한 수치가 판사의 독립적 판단력을 무의식적으로 제약하거나 특정 편향을 강화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AI 추천 결과를 참고 자료로 규정하고 정기적인 알고리즘 감사와 편향성 점검을 병행해야 한다”며 “법관 대상 교육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법 AI 토대는 데이터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강 변호사는 국내 판결문 공개 범위가 제한적인 현실을 지적하며 “비실명화 자동화 기술이 상당히 발전한 만큼 공개 범위를 넓히는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데이터 관리 방식에 대해선 “온프레미스 또는 법원 통제 범위 내 프라이빗 클라우드 방식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리걸테크 기업과의 관계 설정엔 규제 일변도 접근을 우려했다. 그는 “국내에서 과도하게 규제를 강화하면 오히려 해외 거대 기술 기업에 의존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며 “법원이 데이터 제공자이자 최종 검증자로서 주도권을 확보한 상태에서 경쟁 생태계를 조성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강 변호사는 끝으로 “디지털 기술을 다루는 역량과 함께 깊이 있는 법적 사고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사법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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