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디넷코리아]
국내 언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탄소배출권 시장(Carbon Emissions Trading Market)은 탄소를 사고파는 시장을 말한다. 이 시장 확장은 ‘감축량을 얼마나 만들었는가’보다 ‘그 감축이 어떻게 증명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운송 분야는 주행·충전·정비 등 다양한 데이터가 분산돼 발생하고, 참여 주체도 대형 운수사부터 소규모 사업자까지 폭이 넓다. 이 구조에서는 절차가 복잡할수록 참여가 줄고, 증빙이 불명확할수록 신뢰 비용이 급증한다. 결국 시장을 키우는 열쇠는 제도와 현장을 잇는 ‘검증 가능한 신뢰 인프라’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구축하느냐에 있다. 신뢰 인프라는 눈에 보이는 서비스보다 느리게 구축되지만, 일단 자리 잡으면 시장의 성장 속도를 바꾸는 기반이 된다.
블록체인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강점을 발휘한다. 핵심은 “모든 원본 데이터를 올린다”가 아니라, 원본 데이터는 적절한 저장·관리 체계에 두되, 누가 언제 어떤 근거로 산정·보고·검증·승인했는지의 핵심 이벤트를 변경 불가능한 기록으로 남겨 사후 감사와 분쟁 해결 비용을 구조적으로 낮추는 것이다.
또한 권한과 책임 경계를 명확히해 ‘누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시스템 규칙으로 작동하게 만든다. 이때 신뢰가 단지 ‘믿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절차·책임·이력이라는 형태로 표준화돼 반복 가능해진다. 실무 관점에서 이것은 곧 비용 절감이다. 보고서 준비와 검증 대응에 드는 시간, 자료 보완에 따른 재작업, 승인 과정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줄어들수록 참여자는 늘고, 시장은 확장된다.

무엇보다 탄소배출권은 ‘결과값’만 제시해서는 시장이 커지기 어렵다. 감축량이 동일하더라도, 산정 근거가 불명확하거나 검증의 연속성이 약하면 신뢰에 문제가 생긴다. 반대로 근거 데이터와 절차 이력이 일관되게 연결되면, 신뢰는 축적되며 거래·활용의 폭이 넓어진다. 블록체인은 이 ‘축적되는 신뢰’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데 적합하다. 운송처럼 데이터가 연속적으로 생성되는 영역에서는 특히 효과가 크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시스템이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스템이 더 잘 설명되고 더 잘 감사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경쟁력이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공공사업으로 구체화된 사례가 바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주관한 ‘2025년 블록체인 민간분야 확산사업’ 일환인 ‘운송 분야 탄소배출권 거래지원 및 관리 플랫폼 구축’ 사업이다. 이 사업의 의미는 단순히 ‘플랫폼을 하나 만든다’가 아니라, 운송 데이터 기반의 감축 실적 산정부터 검증·관리까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현장 참여 장벽을 낮추는 실증 모델을 정부 지원 체계 아래 사업 컨소시엄이 현장에서 구현·검증한다는 점에 있다.
사업 컨소시엄이 표준에 가까운 실행 모델을 설계·적용하고 실증을 통해 개선점을 축적하면, 민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확산에 집중할 수 있다. 특히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힌 시장일수록 ‘누가 먼저 책임지고 검증할 것인가’가 늘 장애물인데, 이 사업은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사업 컨소시엄이 검증 체계를 실증하고 운영 가능성을 확인함으로써 초기 적용 리스크와 신뢰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확장성이다. 운송 분야는 참여자가 많고 데이터가 풍부해 한 번 신뢰·검증 구조가 자리 잡으면 자동화의 편익이 빠르게 나타난다. 또한 운송에서 검증 가능한 데이터 흐름이 정립되면, 유사한 구조를 가진 다른 감축 활동(다수 참여자·반복 데이터·정기 보고)에도 응용이 가능해진다. 즉, 특정 산업의 단일 서비스가 아니라 ‘검증 인프라의 템플릿’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템플릿은 기술보다 운영을 표준화한다. 운영이 표준화되면 규정 준수도 쉬워지고, 제도 집행의 예측가능성도 높아지며, 결국 시장 참여에 대한 심리적·실무적 장벽이 함께 낮아진다.
마지막으로, 리드포인트시스템(블록체인)·후시파트너스(운수사 사업 확장)·한국지능로보틱스(인공지능)가 각자의 전문성을 하나의 업무 흐름으로 결합한 컨소시엄 구성은 이 사업이 ‘기술 시연’을 넘어 ‘현장 적용과 민간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도 평가할 만하다.
더 나아가 향후 국내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등 제도 기반이 정비된다면, 이 플랫폼에서 축적·검증한 감축 성과와 절차 이력을 바탕으로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토큰화된 인센티브·정산 체계로의 단계적 전환도 가능, 참여 유인을 강화하고 운영 효율을 추가로 끌어올리는 정책적·산업적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