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지에서 기적 이룬 한국 스노보드…’황금 시대’ 시작 알렸다[2026 동계올림픽]

[밀라노=뉴시스]김희준 기자 = 불모지에 가까웠던 한국 스노보드가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 동메달 1개씩을 따내며 ‘황금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번 올림픽 스노보드 경기는 18일(한국 시간) 열린 남녀 슬로프스타일 경기를 끝으로 모두 마무리됐다. 스노보드에 걸린 금메달 11개의 주인이 모두 가려졌다.

스노보드 종목에서 한국은 3번째로 좋은 성적을 냈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는 미국이 스노보드에서 강세를 보였으나 이번에는 일본이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수확한 오스트리아가 2위고, 한국이 뒤를 잇는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종목도 스노보드다. 19일 오전 1시 현재 한국이 따낸 메달은 6개인데 그중 절반이 스노보드에서 나왔다.

빙상에 쏠려있던 한국의 동계올림픽 메달 지형도에 변화가 생겼다. 직전 대회인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따낸 9개의 메달은 모두 빙상에서만 나왔다. 쇼트트랙에서 5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4개를 수확했다.

이전까지 한국 스키·스노보드가 역대 올림픽에서 딴 메달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평행대회전의 이상호(넥센 윈가드)가 딴 은메달이 유일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 대회 성적은 기적에 가깝다.

스타트는 37세의 스노보드 대표팀 맏형 김상겸(하이원)이 끊었다. 김상겸은 지난 8일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결승까지 진출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남자 평행대회전 은메달리스트이자 2025~2026시즌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랭킹 7위인 이상호가 메달 기대를 받았으나 월드컵 랭킹 20위인 김상겸은 관록을 자랑하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4번째 올림픽 출전에서 첫 메달을 꿈을 이뤄낸 김상겸은 한국의 동·하계 올림픽 통산 400번째 메달 주인공이 됐다.
배턴을 이어받은 것은 2008년생의 여고생 스노보더 유승은(성복고)이었다.

유승은은 지난 10일 열린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에서 총점 171.00점을 기록해 3위를 차지,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스노보드가 단일 대회에서 최초로 1개 이상의 메달을 따는 순간이었다.

FIS 월드컵에 막 나서기 시작한 2024년 발목 골절상을 당한 유승은은 부상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손목까지 다치면서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 못했고, 그에게 메달을 기대하는 이도 적었다.

그러나 스노보드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던 유승은은 힘겨운 시기를 이겨낸 후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고, 메달의 꿈까지 이뤘다.

정점을 찍은 것은 최가온(세화여고)이다.

최가온은 지난 13일 열린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0.25점으로 금메달을 획득,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이 종목 3연패를 노리던 클로이 김(미국)을 제치고 이룬 쾌거였다.

한국이 올림픽 설상 종목에서 따낸 역대 최초의 금메달이다. 또 최가온은 클로이 김이 2018년 평창 대회에서 작성한 이 종목 최연소 금메달 기록(17세 10개월)도 경신(17세 3개월)했다.

1차 시기에 큰 부상이 우려될 정도로 크게 넘어지고도 포기하지 않은 최가온은 2차 시기마저 실패했지만, 3차 시기에 고득점에 성공해 극적으로 금메달을 땄다.

이번 성과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올림픽 메달을 향해 달려온 선수들이 이뤄낸 성과다.
김상겸은 2011년 한국체대를 졸업한 이후 실업팀이 없어 생계 유지를 위해 일용직으로 일해야 했다. 국내에 스노보드 실업팀이 처음 창단한 것도 2019년으로 불과 7년 전이다.

국내에 하프파이프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뿐이다. 그마저도 훈련하기에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최가온의 말이다.

이탈리아 땅에서 가능성을 본 한국 스노보드가 기대대로 ‘황금 시대’를 이어갈 수 있으려면 훈련 환경 개선은 필수다.

일본은 꾸준한 투자와 체계적인 육성을 통해 이번 동계올림픽에서는 스노보드 강국으로 완전히 입지를 굳혔다.

2024년 1월 허리를 크게 다친 최가온이 재활을 마치고 설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훈련을 할 때 찾은 곳이 일본이다. 일본에는 에어매트 시설이 있어 여름에도 훈련이 가능하다.

지원과 육성이 이뤄져야 한국 스노보드의 이번 기적이 한순간의 꿈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jinxijun@newsis.com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