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원 “조지 워싱턴 옛집, 노예 관련 철거된 안내판 복원하라”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미국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생일(2월 세 번째 월요일)인 ‘대통령의 날’에 미 연방 법원이 워싱턴의 옛 자택에 있던 철거된 노예들에 대한 설명 표지판을 복원하라고 판결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사무소는 지난달 2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워싱턴의 옛 저택에서 노예 관련 설명 게시판을 철거했다.

◆ 필라델피아 옛 워싱턴 저택의 ‘노예’ 기록 복원 명령

이곳은 워싱턴 대통령과 부인 마사 부부가 1790년대 필라델피아가 잠시 미국의 수도였던 시절 살았던 곳이다.

이 저택을 설명한 안내판에는 이곳에 함께 살았던 9명의 도망 노예 등에 설명이 붙어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전국의 박물관, 공원, 유적지에서 ‘미국 역사에 진실과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 내린 행정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은 내무부에 해당 시설들이 과거 또는 현재의 미국인들을 부적절하게 폄하하는 요소를 전시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

필라델피아시는 이같은 조치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시민들은 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연방지방법원 신시아 루페 판사는 16일 철거의 합법성을 다투는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자료를 원래 상태로 복원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역사적 사실을 다르게 설명하는 대체 자료를 설치하는 것도 금지했다.

◆ 안내판, 도망 노예에 대한 워싱턴의 귀환 요청 광고 내용 등 담겨

철거된 안내판에는 워싱턴 가문에 의해 노예로 잡혀 있던 9명(탈출에 성공한 2명 포함) 각각에 대한 전기 정보를 담고 있다.

그 중에는 버지니아주 마운트 버넌에 있는 가족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난 여성 오니 저지가 있었다.

저지는 1796년 필라델피아의 집에서 탈출해 자유주인 뉴햄프셔로 도망쳤다. 워싱턴은 그녀를 도망자로 선포하고 귀환을 요청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저지가 필라델피아의 한 집에서 탈출했기 때문에, 국립공원관리청은 2022년 그곳을 지하철도 유적지 전국 네트워크에 추가했다.

‘탈출과 도주를 통한 노예제도에 대한 저항의 역사를 기리고, 보존하고, 홍보하겠다’는 취지다.

지난달 안내판을 쇠지렛대 철거한 뒤 시멘트 벽에는 저지와 나머지 여덟 명 노예들의 이름만 남아 있었다.

허큘리스는 1797년 워싱턴 가문이 많은 노예를 소유했던 마운트 버넌으로 끌려간 후 탈출했다. 그는 도망 노예로 선포되었지만 뉴욕에 도착해 허큘리스 포지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지역 정치인들과 흑인 커뮤니티 지도자들은 이번 판결을 환영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유적지 복원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중에 나온 판결이었다.

말콤 케냐타 하원의원(민주·펜실베이니아)은 지역 사회가 트럼프 행정부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에 맞서 승리했다고 말했다.

◆ 판사 “행정부는 역사 왜곡·해체 권한 없어”

공화당 소속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루페 판사는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트럼프 행정부를 소설 속 전체주의 정권인 ‘진실부’에 비유했다.

진실부는 자신들의 주장에 맞춰 역사 기록을 왜곡하는 기관이다.

루페 판사는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무지는 힘이다’라는 모토를 내세운 진실부가 지금 존재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루페 판사는 “연방 정부가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고 해체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그런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난달 청문회에서 법무부 변호사들에게 행정부가 국립공원에 전시할 역사의 어떤 부분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위험하고 끔찍한’ 발언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판사는 전시물을 언제까지 복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한을 제시하지 않았다.

◆ 트럼프 행정부, 국립공원 등에서 역사 지우기 계속

해당 역사 유적지는 행정부가 노예 제도, LGBTQ+ 사람들,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의 역사에 관한 콘텐츠를 조용히 삭제한 여러 곳 중 하나다.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에서 사라진 안내판에는 정착민들이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냈고 광업과 목축을 위해 그 지역을 착취했다고 적혀 있었다.

지난주 스톤월 국립 기념물에서는 무지개 깃발이 내려졌다. 이곳은 술집 손님들이 경찰의 급습에 맞서 저항하며 현대 LGBTQ+ 인권 운동의 불씨를 지핀 곳이다.

행정부는 스톤월 항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여러 명의 트랜스젠더 유색인종 여성들에 대한 언급을 기념물 관련 웹페이지에서 삭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jdrag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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