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에서 함께로…자살 유족이 만든 연결망, 예방정책을 두드린다

[서울=뉴시스] 박미영 기자 = ┼
자살 유족들이 서로를 안고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던 사이로 미소가 번졌다. 상실 이후 ‘혼자’였던 시간이 ‘함께’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한국자살유족협회는 7일 창립 1주년을 맞아 “유족들이 감내해온 목소리를 모아 더 이상의 죽음을 막겠다”며 자살예방 논의에 당사자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협회는 이날 서울 중구 서울시자살예방센터 다모임방에서 가진 1주년 기념 행사와 정기총회에서 유가족을 지원의 수혜자가 아닌 자살 예방의 주체로 확인했다.

강명수 협회장은 기념사에서 “상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안다”며 “그럼에도 침묵하지 않고 연대하기로 선택했다. 함께 울고 버티며 우리의 목소리가 정책과 사회에 닿게 하겠다”고 말했다.

◆유족의 증언으로 선명해진 ‘연결’이라는 공감대

이날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연결’이었다. 사람과 사람, 생명과 생명을 잇는 연결이야말로 고립을 끊고 자살을 막는 출발점이라는 데 참석자들의 공감이 모였다.

한 전문가는 “현장에서 오래 일하며 느낀 것은 자살의 반대편에는 늘 ‘연결’이 있다는 사실”이라며 “유족들이 서로 연결돼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와 이어질 때, 예방의 힘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유족들의 발언은 이 공감대에 삶의 언어를 더했다. 상실을 말하는 이 목소리들은 “다음의 죽음을 막겠다”는 집단적 의지로 이어졌다.

한 유족은 “자살은 개인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들의 삶 전체를 흔드는 사건”이라며 “우리가 겪은 이 아픔을 말하는 이유는, 같은 이유로 또 다른 누군가가 삶을 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유족은 “이 자리는 슬픔을 보상받기 위한 곳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상실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자리”라고 했다.

◆정책의 문을 두드리는 유족들

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총리실에 유족의 자살예방 정책 참여 구조 마련을 촉구했다.

협회는 “자살예방을 논의하는 공적 테이블에서 유족의 목소리는 이제 막 처음 언급되기 시작한 초기 단계”라며 “일회성 발언에 그치지 않고, 유족이 상시적으로 참여해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족의 목소리가 자살예방이 왜 필요한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회적 증언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날 총회에서 문화 공연 무대에 오른 한 유족은 노래로 상실 이후의 시간과, 자살예방 활동가로서 선택한 목소리를 전했다.

그는 “혹독한 삶의 겨울이 있지만, 우리는 그 겨울을 품은 채 봄을 기다리고 있다”며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곧 살아내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노래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한동안 박수가 이어졌다.

현장에 모인 전문가와 활동가들도 유족의 역할 변화를 강조했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매년 수만 명의 유족이 발생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분들이 고립된 채 방치돼 있다”며 “고립을 끊고 서로를 잇는 연결망이 자살예방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살을 막아야 한다는 말을 가장 강력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유족”이라며 “협회는 흩어진 유족들이 서로 연결되고, 나누고, 기억하며 지켜주는 중심이 될 수 있다. 이 연결이야말로 자살을 막는 가장 현실적인 힘”이라고 덧붙였다.

총회에서는 지난 1년 간의 활동도 공유됐다.

협회는 전국 순회 포럼을 통해 자살을 말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고, 동료 활동가 양성과 자조모임을 통해 유족 간 연대를 넓혀왔다. 온라인 공간을 통해 흩어진 유족들이 연결될 수 있는 통로도 마련했다. 협회 측은 “일을 많이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문제가 사회의 상수로 다뤄지게 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협회는 앞으로도 유족 간 연대를 바탕으로 사회적 인식 전환과 정책 참여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강 회장은 “우리는 빠르게 성과를 내기보다 가늘고 길게 가려 한다”며 “각자의 다른 경험을 모아, 더 이상 누군가가 같은 이유로 삶을 놓지 않도록 끝까지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한국자살유족협회가 범정부 자살대응체계 제도화에 맞춰 내놓은 성명 ‘국무총리실에 바란다’ 전문.

한국자살유족협회는 다음과 같이 요청한다.

첫째, 국무총리실 자살대책추진본부의 구성과 운영 과정에 자살 유족 당사자와 자살유족 단체가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명확히 보장해야 한다.

둘째, 자살유족의 참여는 상징이 아니라 실질이어야 하며, 자문기구 수준을 넘어 정책 논의 평가와 과정에 포함되어야 한다.

셋째, 자살 예방 정책의 중요한 축으로 자살 유족 지원과 사후관리 정책을 독립적이고 지속가능한 영역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넷째, 자살 유족에대한 지원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되는 자살을 막기 위한 핵심적인 예방 전략이다.

다섯째, 지역사회·민간단체· 종교기관과 함께 자살유족을 고립시키지 않는 사회적 애도와 돌봄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애도할 수 없는 사회는 같은 비극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여섯째, 자살유족은 더이상 침묵 속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고통의 한복판에서 생명을 지키는 일을 선택해왔고, 앞으로도 그 역할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자살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자살 유족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책임을 나누는 동반자로 인정해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mypark@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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