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초신성 걸그룹 ‘에스파’가 일본 최고 권위의 연말 가요제인 일본 공영방송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한 것과 관련 현지에서 황당한 음모론이 나왔다.
12일 일본 산케이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에스파가 12월31일 방송된 ‘제76회 NHK 홍백가합전’에 ‘오후 8시15분’ 등장한 것에 대해 현지 온라인상에서 말이 안 되는 루머가 확산 중이다.
해당 시간대 출연이 히로시마 원폭 투하 시각인 오전 8시15분(1945년 8월6일) 혹은 일본의 패전일(한국의 광복절)인 8월15일을 떠올리게 하는 의도가 있다는 주장이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제기 된 것이다.
해당 논란은 신빙성이 부족함에도 현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일부 일본 누리꾼들은 “우연이 아닌 고의적인 일” “NHK가 에스파를 의도적으로 이 시간에 등장시켰다” 등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빅 플래시(big flash)'(거대한 섬광), ‘드롭(drop)'(떨어지다) 등 에스파 곡의 노랫말에 포함된 몇몇 단어가 원폭 투하 상황을 암시한다는 황당무계한 글도 등장했다. “에스파 소속사가 중국 자본과 연결돼 있다”고도 했다.
NHK 측은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에 루머가 계속되자 “전혀 근거가 없는 가짜 정보다. 그러한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일부 일본 누리꾼은 에스파 중국인 멤버 닝닝이 독감을 이유로 ‘홍백가합전’에 불참했는데, 4시간 뒤에 한국 연말 음악 프로그램 ‘MBC 가요대제전’에 닝닝 포함 멤버 4명이 출연한 것을 두고도 음모론을 제기했다. 닝닝 측이 그녀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루머 역시 사실이 아니다.
에스파가 NHK ‘홍백가합전’에 등장한 시간은 공교롭게도 오후 8시15분 전후가 맞다. 그런데 ‘MBC 가요대제전’에 나온 시간대는 1월1일 0시36분께다.
생방송인 ‘NHK 홍백가합전’ 출연 후에 실제 4시간 만에 ‘MBC 가요대제전’ 라이브에 출연했다면, 일본 도쿄에서 한국의 경기 고양 일산 MBC 드림센터 공개홀까지 약 4시간 만에 이동한 셈이 된다.
일본 한 칼럼니스트는 NHK홀에서 하네다 공항까지 최소 30분은 걸리고 당일 하네다 공항에서 한국으로 가는 출발편은 오후 8시5분 다음엔 1월1일 오전 1시30분 출발 심야편이라는 점을 짚었다. 전자의 경우는 탑승할 수 없고, 후자는 ‘MBC 가요대제전’ 출연 시간을 넘겨 버린다는 것이다. 당일 나리타 공항에 오후 8시40분 출발하는 항공편이 있었지만, NHK 홀이 있는 시부야에서 나리타까지는 최소 1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쪽도 탑승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국제편은 체크인 마감이 출발 1시간 전이다. 에스파가 전세기를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에스파 세 멤버가 1월1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는 보도가 있기 때문에 억측이라고 꼬집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에스파는 지난달 28일 오후 1시 30분부터 ‘MBC 가요대전’ 사전 녹화를 진행했다.
앞서 닝닝은 지난 2022년 팬 소통 플랫폼에 “예쁜 램프를 샀다”라는 글과 함께 탁상용 조명 사진을 올렸다. 당시 원자폭탄의 버섯구름을 닮았다고 일부 일본 팬들이 주장하긴 했으나, 해당 건은 논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동안 잠잠했던 해당 내용은 에스파의 이번 ‘홍백가합전’ 출연 결정 이후 일부 일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시 거론하기 시작했고, ‘닝닝 ‘홍백가합전’ 출연 반대’로까지 번졌다. 에스파 소속사와 NHK 모두 관련 루머를 부인했다. 이후 닝닝이 건강 문제로 해당 방송에 불참하게 됐다.
일각에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자위대 개입 가능성’ 발언으로 인한, 중·일 갈등이 애꿎은 에스파에 불똥이 튄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중이다.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일본 내에서도 K-팝을 비롯해 서로에 대해 더 이해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일본 유력지 아사히신문은 닝닝 사태를 다루며 “K-팝엔 다국적 그룹이 많은 만큼, 전 세계의 팬들이 언어와 문화, 입장의 차이를 넘어 ‘좋아한다’는 감정으로 연결될 수 있는 원동력이 돼 왔다”면서 “현실의 인간관계에서 다른 문화를 접할 때 마찰은 피할 수 없지만, 그 이질감의 배경을 깊이 들여다봐 다른 쪽에서 보이는 풍경을 알게 됨으로써 서로 다가갈 수 있는 경우는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 ‘소동’이 분열이 아닌 이해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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