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디 머큐리와 리빙스턴이 남긴 해방의 섬…'잔지바르'

[잔지바르=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물보라가 부서진다. 아이들이 바다를 향해 전력으로 몸을 던진다. 머뭇거림도, 준비동작도 없다.

단지 ‘이 순간’에 대한 믿음 하나로, 그는 파도 속으로 날아오른다.

바람 한 줄기, 함성소리. 이곳에서의 달리기는 경기이자 의식이고, 삶이다.

운동화는 필요 없다.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의 모래 위를 맨발로 걷는 순간, 피부에 스미는 건 바닷물만이 아니다.

푸르다 못해 검푸른 인도양, 그 위를 유유히 가르는 하얀 작은 배들, 그리고 해안에 늘어선 형형색색의 옷차림.

아프리카 탄자니아 잔지바르(Zanzibar)의 색은 단순한 풍광을 넘어선다.

페르시아어로 ‘검은 해안’을 뜻하는 잔지바르는, 산호와 향신료로 이름난 인도양의 무역항이자 한때 노예를 사고팔던 비극의 현장이었다.

아프리카 대륙 동쪽 끝, 인도양 위에 떠 있는 잔지바르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못사는 나라’로서의 아프리카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박동친다.

이 섬은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이며, 다양한 문화가 혼용된 다문화 지역이다. 1964년에는 내륙국 탕가니카와 합병해 ‘탄자니아’라는 새로운 국가의 자치령이 되었고,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배출하기도 했다. 현재 이곳에는 약 200~300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약 1.3배 크기인 잔지바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스펙트럼이다.

깊고 어두운 바다, 붉고 부드러운 태양, 환하고 다채로운 거리의 색들. 이곳에서는 눈이, 마음이, 감각의 모든 층위가 색에 반응한다.

특히 스톤타운의 바다는, 오래된 기억조차 용서한 듯이 푸르다.

7~8월, 한국의 휴가철에 이곳은 오히려 가을에 접어드는 날씨로, 한낮에도 한국보다 덥지 않다.

포르다니 공원을 지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가면, 기념품 상점과 공방, 모스크와 주거지가 뒤엉킨 스톤타운에 닿는다.

커다란 목재 대문, 정교한 문양, 손으로 만든 장신구와 회화들. 이 도시는 분명 아프리카에 있지만, 중동의 어느 항구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스톤타운은 매년 6월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리는 잔지바르의 대표적인 명소다.

특히 해 질 무렵 포르다니 광장엔 생의 맥박이 펄떡인다. 아이들은 맨발로 바다를 향해 질주하고, 카메라를 향해 웃는다.
그 웃음은 수백 년 억눌린 기억을 단숨에 해방시킨다.

◆성지가 된 프레디 머큐리 생가
그는 단지 노래한 게 아니라, 이 섬의 ‘자유’를 전 세계에 울려 퍼지게 했다. 바다와 바람과 사랑과 저항 그 모든 감정의 색을 불렀다.

잔지바르 섬, 바다의 짠내와 뱃고동 소리를 타고 전설은 그렇게 태어났다.

퀸(Queen)의 보컬이자 세기의 록스타, 프레디 머큐리(본명: 파로크 불사라)는 이 섬의 작은 골목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가는 이제 프레디 머큐리 뮤지엄이라는 이름을 달고 관광객을 맞는다.

허름한 흰 벽의 외벽엔 조촐한 표식 하나, ‘이곳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태어났다.’

그러나 벽보다 더 진하게 그를 기억하는 것은 거리다.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줄을 서는 곳. 뮤지엄 벽면엔 그의 말이 새겨져 있다. ‘I’m not going to be a Star, I’m going to be a Legend.'(나는 스타가 되지 않을 거야. 나는 전설이 될 거야.)

프레디는 자신을 그렇게 예언했고, 잔지바르의 바다는 오늘도 그 진동을 기억한다. 바다와 바람과 자유, 그리고 해방의 목소리로. 스톤타운 중심에 자리한 프레디 머큐리 뮤지엄은 이제 작은 성지가 되었다.

“여기가 프레디 머큐리가 태어난 곳이래.”

관광객들이 속삭이며 지나간다. 그는 잔지바르의 자부심이며, 해방의 목소리다.

◆리빙스턴, “이곳에서 다시 아프리카로 나아가다”
그보다 더 오래전, 잔지바르는 또 하나의 역사의 무대였다.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1813~1873)은 내륙 아프리카 탐사 이후 마지막 거처로 이곳을 택했다.

그의 시신은 아프리카 내륙에서 운반되어 이 섬에 도착했고, 유럽으로 향하는 긴 여정의 중간, 이 집에 안치되었다.

건물 외벽의 붉은 원형 팻말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건물은 1841년부터 1874년까지 영국 영사관이었다.
스픽(Speke), 버튼(Burton), 그랜트(Grant), 커크(Kirk)가 이곳에서 살았으며, 데이비드 리빙스턴도 이곳에 머물렀다. 그의 시신은 유럽으로 향하는 긴 여정 중 이 집에 안치되었다.”

시간은 흘렀고, 지금 이 건물은 ‘LITHOS AFRICA’라는 보석 전시장이 되어 있었다.

탐험가의 발자취 위에 빛나는 탄자니아 보석이 진열되고 있었다. 리빙스턴의 그림자는, 여전히 진열장 너머에서 역사를 속삭이고 있다.

이제 잔지바르의 뱃사공들은 관광객을 태우고 ‘프리즌 아일랜드’로 향한다. 한때 노예 수용소였던 이 섬은 지금 ‘프리즌 레스토랑’이 되어 커플이 칵테일을 마시며 웃는 장소로 변모했다.

가혹한 감금의 공간이 유쾌한 식사의 장소가 되었다. 시간이 만든 패러독스, 기억의 아이러니다.

◆스톤타운은 복원중
잔지바르의 스톤타운은 도시가 아니다. 시간이 내려앉은 건축의 박물관이다. 해양 문명과 제국주의, 노예무역과 독립운동의 파편들이 돌과 석회, 나무와 금속의 건축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썩은 창틀, 금 간 석회벽, 문 위에 말라붙은 조각들. 그 허름함은 오히려 생생한 기억의 증거다.

“LET US SAVE OUR HERITAGE TOGETHER.”(우리의 유산을 함께 지켜냅시다)

복원의 구호 아래, 되묻는다.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누가 이 유산을 기억할 권리를 갖는가?

과거의 고통을 품은 바다는, 지금 누군가의 놀이터가 되었다.

소금기 어린 검은 피부, 외국인의 카메라를 향한 장난기 어린 미소. 그들의 가벼운 몸짓은, 마치 이 섬이 품은 수백 년의 굴곡을 단숨에 해방시키려는 듯하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포르다니 광장은 해가 기울수록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며, 거대한 야시장으로 변한다.

비록 외국인을 위한 관광지로 포장돼 있지만, 해방된 잔지바르인들의 삶은 검푸른 바다와 함께 뒤척이며,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

만약 리빙스턴이 지금 이 거리를 다시 걷는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우리는 해방을 위해 싸웠고, 생은 이렇게 살아 숨쉰다.”

‘인도양의 흑진주’로 불리는 잔지바르에는 여덟 개의 비치가 있고, 그 곁마다 고급 리조트들이 자리한다.

수영장이 있고, 야자수 아래 하얀 파라솔이 드리워진 해변. 그 위로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일렁인다.

낙후된 모험의 아프리카가 아닌, 눈앞에 펼쳐진 건 환상의 낙원이다.

해 질 무렵, 오렌지빛 노을 아래 검은 야자수가 실루엣처럼 떠오르고, 가로등과 상점의 불빛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거대한 바다, 뒤척이는 파도. 유럽을 향해 밀려났던 검은 몸들의 기억, 그리고 다시 되돌아오는 새로운 시간의 물결.

오토바이 소리, 북적이는 자동차, 그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까지, 지금 잔지바르는 그 어느 도시보다 생의 활기로 넘쳐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리빙스턴이 꿈꿨던 해방과, 머큐리가 노래한 자유가 살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반복하고 순환하며, 다시 살아간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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