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세계는 지금 깊은 긴장과 분열의 지형도 위를 지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의 비극부터 중동에서 들려오는 불온한 파열음까지, 국제 정세는 유례없는 불확정성의 시대를 관통하는 중이다. 갈등이 일상이 된 이 불화의 연대기 속에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위로와 연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결핍의 시기에 방탄소년단(BTS)이 오는 21일 광화문 광장에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의 무대를 펼친다. 그간 이들은 단순한 음악적 성취를 넘어, 시대의 문턱마다 유의미한 윤리적 메시지를 기입해 온 아티스트다. 2018년 UN 총회에서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를 통해 자기 존중이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졌고, 팬데믹의 심연에 머물던 2020년에는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으로 삶의 지속성을 긍정했다. 2021년 다시 선 UN 무대에서는 멈춰버린 세계 속에서도 미세하게 전진하는 미래 세대의 박동을 대변하기도 했다.
이들의 음악은 팝이라는 장르적 틀을 넘어, 당대의 허기를 채우는 ‘희망의 문법’으로 기능해 왔다. 이번 앨범 ‘아리랑’ 역시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아리랑’이라는 텍스트가 품은 그리움과 연민의 정서는 특정 문화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에겐 숙명적인 이 노래의 선율을, 이제는 세계의 시민들이 방탄소년단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학습하며 저마다의 ‘보편적 슬픔’을 대입하고 있다. 떠남과 기다림 그리고 재회를 향한 염원은 국경과 이념이라는 인위적 경계를 허물고 인류가 공유하는 가장 투명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 음악적 서사는 전쟁과 상실로 마멸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고결한 위무로 확장된다. 때로 음악은 정치라는 거친 언어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사람과 사람을 잇는 법이다.
공연의 무대가 될 광화문이라는 공간은 이러한 메시지에 상징적 두께를 더한다. 이곳은 불과 몇 년 전 수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여 평화적 연대의 가능성을 증명했던, 한국 민주주의의 뜨거운 기억이 층층이 쌓인 공간이다. 과거의 촛불은 시민적 주체성의 상징이었다. 이번엔 아미밤(Army Bomb)의 보랏빛 물결이 광화문 광장을 밝힌다. 이미 방탄소년단과 아미, 하이브와 서울시 그리고 서울시민은 2023년 여의도 페스타를 통해 대규모 인파 속에서도 안전과 질서라는 성숙한 축제 문화를 선보였다. 이제 광화문이라는 역사적 캔버스 위에 새로운 연대의 풍경을 그려낼 준비를 마쳤다.
갈등과 반목의 시대에 대한민국의 중심에서 울려 퍼질 이번 광화문 무대 역시 단순한 콘서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전 세계 190개국 수천만 명의 팬들에게 이 순간은 음악으로 결속되는 경이로운 공시적 체험이 될 것이다. 2003년 ‘비틀스’ 폴 매카트니가 로마 콜로세움 외부 광장에서 수십만 관객과 호흡하며 선보였던 ‘광장의 미학’처럼, ’21세기 비틀스’인 방탄소년단의 이번 공연 또한 국적과 세대를 불문하고 모든 존재가 뒤섞이며 연대하는 순간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광화문에서 울려 퍼질 선율은 음악이라는 가장 평화로운 방식으로 연대하자는 이 시대의 간절한 청유다. 전 지구적 갈등의 한복판에서, 한 도시의 노래가 전 세계의 상처를 보듬는 광경은 그 자체로 문학적이다. 방탄소년단은 ‘웨일리언 52(Whalien 52)’ 속 고립된 고래의 주파수로 노래했다. 아무에게도 닿지 않을 것 같던 그 외로운 52헤르츠의 울림은 이제 전 세계로 확산돼 거대한 공명(共鳴)의 바다를 이뤘다. 그 울림은 이제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공유지가 됐다. 그렇다. 노래는 특정 누구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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