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BIO] ‘왕사남’ 단종도 피하지 못했다…조선 왕실 질병사

※ [문형민의 알아BIO]는 제약·바이오·의료 이슈를 취재해 쉽게 설명하는 연재 기사입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한 장면[쇼박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쇼박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설 연휴 극장가 최후의 승자는 ‘왕과 사는 남자’일 겁니다.

지난 4일 개봉 이후 2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데요.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임금 단종과 그를 곁에서 지킨 사람들의 처절한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아내며 관객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영화 속 단종은 숙부 세조에 의해 영월로 유배된 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비운의 주인공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단종을 짓눌렀던 것이 단순히 권력 다툼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단종에게는 몸을 갉아먹던 고통스러운 질병이 있었는데요.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단종은 임금이 되자마자 온몸에 퍼진 종기 때문에 침을 맞고 나랏일을 쉬어야 했을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왕관의 무게와 심리적 압박감이 가문 내력인 피부 질환을 더 심하게 만드는 불씨가 된 셈입니다.

조선시대 왕의 병은 개인의 아픔을 넘어 정치판을 뒤흔들고 나라의 운명까지 바꾸는 결정적인 변수가 되기도 했는데요.

절대 권력을 쥔 임금이라 해도 현대의 눈으로 보면 당뇨나 고혈압, 그리고 마음의 병인 화병에 시달렸던 한 명의 인간일 뿐이었던 거죠.

이번 [문형민의 알아BIO]에서는 실록을 통해 살펴본 왕들의 삶과 죽음을 지배했던 질병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한 장면[쇼박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쇼박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단종·문종·세조가 앓았던 ‘종기’…’화농성 한선염’

조선 초기 왕들을 가장 끈질기게 괴롭힌 건 등과 얼굴에 피어나는 지독한 종기였습니다.

조선시대 왕들 중 최소 12명이 앓았던 병으로, 오랜 기간 고통 속에 빠뜨렸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했는데요.

단종의 경우, 즉위년 실록에 “머리와 몸에 난 종기가 덧나 통증이 심해 정사를 쉬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어릴 때부터 피부병으로 고생이 심했습니다.

아버지 문종 역시 “종기가 터져 고름이 흐르는데도 정무를 보았다”는 안타까운 기록을 남긴 채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종기 때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숙부인 세조도 온몸에 고름이 잡히는 피부병으로 평생 고통 받았으며, 이를 고치려 전국 방방곡곡의 온천과 절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현대 의학은 이를 단순히 안 씻어서 생긴 병이 아니라, 유전적 성향이 강한 ‘화농성 한선염’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극심한 스트레스가 면역력을 무너뜨리면서 염증이 피를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패혈증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당시 어의들은 고약을 바르거나 침으로 고름을 짜내는 게 전부였지만, 이는 오히려 2차 감염의 위험을 높이는 위험한 처방이었습니다.

만약 지금 시대였다면 강력한 항생제와 소독만으로도 충분히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겁니다.

또한 충분한 잠을 자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이 피부 질환의 재발을 막는 가장 좋은 예방법인데요.

단종의 경우 왕위를 노리는 숙부의 압박이 심리적 독이 되어 피부병을 치명적으로 키웠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연합뉴스 자료사진]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 세종과 성종 덮친 ‘소갈’…합병증까지 앓았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은 사실 몸 구석구석 성한 곳이 없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었습니다.

세종실록 92권을 보면 “두 눈이 흐릿하고 침침해 봄부터는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 힘들다”는 실명에 가까운 기록이 나옵니다.

고기만 즐기고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던 식습관이 부른 결과였을까요.

이는 전형적인 당뇨 합병증인 ‘당뇨망막병증’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세종은 승하하기 전 10년 동안 거의 앞을 보지 못한 채 훈민정음 창제에 매달렸습니다.

성종 역시 실록 295권에 “가슴속이 타는 것 같아 찬물을 계속 마시고 몸이 뼈만 남을 정도로 말랐다”는 소갈의 전형적인 증세가 그대로 적혀 있는데요.

실록은 성종이 임종 직전까지도 극심한 갈증에 시달리며 찬물을 찾았고, 결국 몸의 진액이 다 빠져나가 수척해진 상태로 숨을 거뒀다고 전합니다.

현대 의학으로 보면 이들은 혈당 조절 기능이 망가진 ‘제2형 당뇨’와 그로 인한 대사증후군을 앓았던 셈입니다.

그 시절엔 혈당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 온천물에 몸을 담그거나 갈증을 달래는 차를 마시는 게 치료의 전부였습니다.

만약 지금이라면 실시간 혈당 모니터링과 인슐린 주사 처방으로 시력을 지키고 생명을 연장했을 겁니다.

또 흰 쌀밥 위주의 왕실 식단을 채소와 단백질 위주로 바꾸는 식단 교정이 필수적으로 이뤄졌을 겁니다.

무엇보다 꾸준히 걷고 움직이는 유산소 운동은 소갈병을 막는 가장 확실하고도 유일한 예방법입니다.

화병환자 (CG)[연합뉴스TV 자료][연합뉴스TV 자료]

◇ ‘화병’ 숙종·‘신경증’ 순조…마음의 병이 몸으로 번졌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졌던 숙종은 실제론 불같은 성격 때문에 만성적인 화병과 간 질환을 평생 달고 살았습니다.

실록은 숙종의 건강 상태를 이렇게 전하는데요.

“이 때에 왕의 노여움이 폭발하고 점차로 번뇌가 심해져, 입에는 꾸짖는 말이 끊이지 않았고, 밤이면 또 잠들지 못하다, 마음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번뇌가 심했다.”

이는 전형적인 화병 증세입니다.

숙종은 평소에도 “가슴속에 열기가 치솟는다”는 말을 자주 했고, 말년엔 눈과 몸이 노랗게 변하는 황달 증세까지 보였습니다.

당쟁이 한창이던 시절, 환국 정치를 통해 신하들을 쥐고 흔들며 겪었던 극심한 심리적 압박감이 간 기능을 망가뜨린 주범으로 보입니다.

실록은 숙종의 사인을 ‘간화(肝火)’, 즉 간의 열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의 간경변이나 스트레스성 간 손상에 해당합니다.

순조 역시 세도 정치의 틈바구니에서 무력감을 느끼며 “다리가 마비되고 정신이 멍하다”는 기록을 남길 만큼 각종 신경성 질환에 시달렸는데요.

실록에는 순조가 어린 나이에 즉위해 수렴청정과 세도 정세에 시달리며 종일 말 한마디 없이 멍하니 앉아 있거나, 까닭 없는 슬픔에 잠겼다는 묘사가 자주 등장합니다.

초기엔 편두통이 순조를 괴롭혔습니다. 재위 10년 들어서 “귀 주변이 아프면서 당긴다”며 처방을 요구하는 기록이 자주 나오고요.

다음 해인 재위 11년, 신하들은 순조에 대해 “전좌(殿座)하는 일이 잦다”고 나무라는데요. ‘전좌’란 앉아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불안 증세를 말합니다.

당시엔 우황청심원 같은 약에 의존해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지금이라면 숙종에게는 분노 조절을 돕는 심리 상담과 함께 스트레스로 지친 간 수치를 정기적으로 체크하는 내과적 관리가 병행됐을 겁니다.

극심한 불안 장애와 무력감을 보인 순조에게는 전문적인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처방을 통해 신경계의 안정을 찾고 정신적 에너지를 회복하는 치료가 우선시됐을 겁니다.

침술[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게장과 생감 먹고 급사한 경종…의료 사고 겪은 효종

조선 역사가 뒤바뀐 결정적인 순간들 뒤에는 예상치 못한 죽음과 뼈아픈 의료 실수가 있기도 했습니다.

경종은 왕이 된 지 4년 만에 “게장과 생감을 먹은 뒤 밤새 복통과 설사가 멎지 않았다”는 기록을 끝으로 허무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실록에 따르면 경종은 평소에도 몸이 약했는데, 상극인 음식을 먹은 뒤 급격한 구토와 설사로 기력이 다한 상태였습니다.

의료계는 이를 단순한 식중독을 넘어 급성 위장염에 의한 쇼크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때 동생인 영조가 어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올린 인삼과 부자가 상태를 더 나쁘게 했다는 논란은 훗날 ‘경종 독살설’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음모론의 시작이 되기도 했죠.

북벌의 꿈을 키우던 효종의 죽음은 더욱 황당한데요. 효종은 조선 최악의 의료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효종은 즉위 10년째 되던 1659년 얼굴에 부스럼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부스럼은 종기처럼 크게 부어올랐고 열감과 통증이 커졌습니다.

효종은 치료를 위해 과거 자신의 낙상사고를 치료했던 의관 신가귀를 불러들였는데요. 신가귀는 종기의 독이 얼굴로 퍼졌다며 침으로 피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의는 이를 반대했지만 왕은 신가귀에게 침놓기를 허락했는데요.

침이 혈관을 건드리면서 출혈이 분수처럼 쏟아졌고, 지혈에 실패한 효종은 그날 오후 과다출혈로 허망하게 승하했습니다.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경종의 경우 제때 전해질 수액만 충분히 공급했어도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상태였고요.

효종의 사례 역시 지금의 정밀한 혈관 봉합 수술과 응급 수혈 시스템이 있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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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민(moonbr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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