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 대신 ‘기후 행동’ 들었다…국회 문턱 넘은 K-팝 팬덤의 진격

[서울=뉴시스]이재훈 신지아 인턴 기자 = K-팝 팬덤은 이제 단순한 ‘팬심’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기후 액티비즘’의 전위로 진화하고 있다. 화려한 조명과 함성 뒤에 가려진 탄소 배출의 그림자를 직시하고, 지속 가능한 ‘덕질’을 위해 입법부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의원(문화체육관광위원회)과 기후행동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 면담은 K-팝의 글로벌 영향력이 어떻게 구체적인 정책과 입법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자리였다.

케이팝포플래닛 측은 현재 정부가 보유한 ‘저탄소형 녹색행사 가이드라인’이 2008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짚었다.

2023년 BBC ‘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된 이다연 캠페이너는 “현재 정부의 ‘저탄소형 녹색행사 가이드라인’은 2008년 제정 이후 18년째 사실상 멈춰 있다”며 “공연 산업의 급격한 성장과 기후위기 현실을 반영한 실질적 기준 마련을 위해 국회와 정부, 산업계가 함께하는 공식 협의체를 구성해달라”고 강조했다.

K-팝 콘서트는 이제 대규모 물량과 첨단 기술이 집약된 종합 예술의 결정체다. 하지만 이를 운영하는 기준이 18년 전의 가이드라인에 묶여 있다는 사실은, K-팝의 위상에 가려진 뼈아픈 이면이다.

특히 저탄소 콘서트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케이팝포플래닛 공동 설립자 누룰 사리파(Nurul Sarifah)는 “세계 최대 규모의 K-팝 팬층이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는 홍수 등 기후 재난으로 공연이 취소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팬들은 기후위기를 일상 속에서 실존적 위협으로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K-팝 본고장인 한국이 저탄소 공연 표준을 정립한다면, 그 문화적 영향력은 탄소 감축 이상의 강력한 파급력을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면담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 인도네시아 팬들은 “우리가 지금처럼 행복하게 K-팝을 좋아할 수 있게 앞장서달라”는 메시지를 한국어 영상 편지에 담아 박수현 의원에게 전달하며 감동을 더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케이팝포플래닛 설문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케이팝 팬의 92.2%가 ‘저탄소 콘서트를 원한다’고 답했다. 현재 ‘케이팝 카본 헌터스’ 캠페인에는 전 세계 1만 명에 가까운 팬들이 결집한 상태다.

박수현 의원은 팬들의 목소리에 ‘정치적 수사’ 대신 ‘행정적 속도’로 화답하며 현장의 온도를 높였다.

그는 현장에서 즉시 선임 비서관에게 문화체육관광부의 로드맵 제출 요구와 입법 영역으로의 확장 검토를 지시했다.

박수현 의원은 “지구와 미래 세대를 위한 가치있는 활동에 깊이 공감한다”면서 “문체부로 하여금 저탄소 콘서트 가이드라인의 로드맵을 이끌어내고, 동시에 협의체를 만들어 같이 활동해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어 “바로 다음에 열리는 상임위에서 가이드라인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질의하겠다”고 했다.

박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단순한 덕담을 넘어, 거대 담론인 기후 위기를 젊은 세대와 함께 호흡하며 풀어내겠다는 ‘정치적 파트너십’의 선언으로 읽힌다.

이번 면담은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나 미국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 등 글로벌 팝 스타들이 주도해온 저탄소 투어 흐름에 K-팝이 제도적으로 합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케이팝포플래닛이 제안한 ▲탄소 배출량 측정 기준 정립 ▲인센티브 정책 ▲시범 사업 추진 등은 K-콘텐츠 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핵심 과제들이다. K-팝 팬덤의 응축된 결속력이 국회라는 제도권의 문턱을 넘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sja29@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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