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수만 번의 선.
빠르지 않다.
서두르지도 않는다.
김홍주의 회화 앞에 서면
나는 오래된 질문을 되뇐다.
그림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혹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되는가.
가까이 다가가면
화면은 해체된다.
연필과 볼펜, 아크릴 물감.
수천 개의 선이 겹치고 스치며
질감이 된다.
한 발짝 물러서면
선들은 하나의 덩어리로 응결된다.
의미를 읽기 전에
감각이 먼저 도착한다.
김홍주는 말한다.
자신은 그림에
명확한 메시지를 담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의 화면에는
설명 이전의 사고,
언어 이전의 인식이 쌓여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그렸는가’가 아니라
어떤 상태로 그리는가다.
이 세필의 노동은
통제에서 시작해
곧 수행으로 이동한다.
반복되는 선 긋기는
의식을 벗어나
감정과 감각의 심연으로 내려간다.
회화는 설명이 아니라
도달해야 할 상태가 된다.
그의 그림에는
시간이 있다.
그려두었다가
한참 뒤 다시 더하고,
어떤 부분은 끝내 비워둔다.
완성과 미완의 경계는
의도적으로 흐려진다.
시간은 배경이 아니라
재료가 된다.
김홍주는
바탕 처리되지 않은 생천 위에 작업한다.
스트레처로 화면을 팽팽히 고정하는 방식도
거부한다.
캔버스의 가장자리는 말려 들어가고
거친 천과 물감은 직접 충돌한다.
회화를
‘가상의 창’으로 만드는 장치를
스스로 지운다.
남는 것은
세필의 노동뿐이다.
이 반복은
통제가 아니라 수행이다.
의식의 끝에서
무의식의 깊이를
조심스럽게 길어 올리는 행위.
이때 회화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이라는 거룩한 순간에 머문다.
생각보다 먼저 도착하는 감각,
설명보다 앞서는 떨림.
느낌은 언어 이전에,
영혼이 먼저 사용하는 언어다.
오늘날 이미지는
너무 빠르게 소비된다.
김홍주의 회화는
이 과잉의 흐름 속에서
가장 드문 미덕을 선택한다.
느리게.
끝까지 가는 행위.
김홍주의 회화는
무언(無言)에 가깝다.
그러나 이 침묵은
비어 있기보다는
무언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상태에 가깝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화면 아래에서
계속 숨을 고른다.
그래서 그의 그림 앞에서
질문은 바뀐다.
이 그림은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얼마나 오래
아무 말 없이
머물 수 있는가.
회화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는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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