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국책사업 리스크 걷어낸 ‘관리의 기술’…”대형연구시설 지원제도”

[서울=뉴시스] 심지혜 기자 = ‘꿈의 현미경’으로 불리는 다목적방사광가속기가 이르면 올 상반기 충북 오창에서 착공될 예정이다. 물질 구조를 원자 단위로 관찰할 수 있는 국가 핵심 연구 인프라로, 이 사업은 2021년부터 2029년까지 1조506억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국책 사업이다.

대규모 예산과 장기간 일정이 동시에 투입되는 만큼 구축 과정 역시 단순한 건설 사업을 넘어선다. 연구장비의 성능과 건축, 운영 체계가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하는 고난도 프로젝트다. 다목적방사광가속기 사업은 정부의 ‘대형연구시설 구축관리 지원제도’를 거치며 여러 기관이 관여하면서 생길 수 있었던 혼선을 줄이고 사업의 불확실성을 걷어내며 체계적인 추진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일정 지연·예산 증액 반복된 대형 연구사업

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대형연구시설 구축관리 지원제도는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연구기반 구축 R&D 사업 가운데 기술적 난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사업을 대상으로, 구축 전 과정에 걸쳐 관리와 컨설팅을 지원하기 위해 2022년 도입됐다.

제도 도입의 배경에는 대형 연구시설 구축 과정에서 반복돼 온 일정 지연과 사업비 증액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대형 연구시설은 기술적 난제가 복합적으로 얽히고 요소기술이 세분화돼 관리가 복잡하다.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만큼 실패 시 대규모 매몰비용이 발생할 수 있어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높다.

제도 도입 이전인 2021년 기준으로 정부가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추진된 대형연구시설구축사업은 모두 19개다. 이 가운데 10개 사업에서 일정 지연이나 사업비 증가 등 계획 변경이 발생했다.

구체적으로 일정이 늘어난 사업은 8개로, 평균 3.9년의 지연이 발생했고 최대 9년까지 사업 기간이 연장된 사례도 있었다. 사업비 증가 역시 빈번했다. 10개 사업에서 당초 5조5000억원이던 총사업비는 14.2%가 증액된 것으로 집계됐다. 단일 사업이 아니라 여러 사업에서 유사한 문제가 반복됐다는 점에서 정부는 이를 구조적 문제로 인식했다.

정부는 이러한 지연과 증액이 단순한 기술 실패나 개별 사업단의 역량 문제라기보다 대형 연구시설 구축 방식 전반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했다. 대형 연구시설은 연구장비 도입과 건축, 운영 준비가 동시에 진행돼야 하는데 각 단계가 따로 움직이면서 조정과 의사결정이 늦어지는 구조가 고착돼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설계 변경이 반복되거나 일정 지연이 곧바로 사업비 증가로 이어지는 사례가 누적돼 왔다는 분석이다.

◆ 분절됐던 소통…정부 지원 통해 논의 속전속결

다목적방사광가속기 사업은 대규모 연구시설 구축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복잡성을 관리 지원을 통해 풀어낸 사례다. 사업 초기 건축과 사업 총괄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가, 연구장치 개발은 공동연구기관인 포항가속기 연구소가 맡는 구조로 추진되면서 전체 사업을 관통하는 의사결정이 통일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설계와 구축, 장비 개발을 종합적으로 조율할 체계가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대형 연구시설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관리한 경험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각 기관이 맡은 역할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전체를 관통하는 관리 구조가 부재했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해지고, 조정이 필요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논의가 길어지는 부담도 존재했다.

이에 따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관점에서 사업 구조와 역할, 의사결정 체계를 정리하는 방향으로 구축관리 지원이 이뤄졌다. 설계·구축·장비 개발을 개별 과제로 보기보다 통합 관리하고, 사업 전반의 일정과 리스크를 함께 점검하는 체계가 도입됐다. 여러 기관이 관여하면서 발생할 수 있었던 혼선을 줄이고 추진 과정의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정부는 단순히 사업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관리 대상을 지정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수천억원 규모의 사업이라 하더라도 단순한 장비 나열이나 시설 구축에 그칠 경우 전문위원회 논의를 거쳐 대상에서 제외한다.

◆ 통제 아닌 관리…”지연 없는 사업 지원이 핵심”

대형연구시설 구축관리 지원제도는 사업을 대신 수행하거나 사후적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제도가 아니다. 사업단이 구축 전 과정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역량을 보완하는 데 목적이 있다. 기획과 설계, 구축, 완공에 이르는 전 주기를 대상으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 개념을 적용해 범위·일정·비용·리스크 관리 체계를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 컨설팅과 교육을 병행한다.

사업 착수 초기에는 정책과 제도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기본교육을 제공한다. 이후 사업 유형과 추진 단계에 맞춰 PM 주요 영역에 대해 심화교육을 진행한다. 최근에는 각 사업단의 특성과 현안을 반영한 맞춤형 교육이 중심이 되고 있다.

사업단 간 협의체 운영도 제도의 한 축이다. 단장 협의체와 실무자 협의체로 나눠 운영하며 사업단장 간에는 사업관리 적용 경험과 조직 운영 방식, 부처 대응 전략 등을 공유한다. 실무자 협의체에서는 설계 적정성 검토 준비, 장비 도입 절차, 외자 장비 발주와 계약 관리 등 실제 사업 과정에서 마주치는 실무 사례와 해결 경험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 “규제 아닌 지원…단계마다 함께 점검”

현재 대형연구시설 구축관리 지원제도를 통해 관리되고 있는 사업은 모두 7개다. 다목적방사광가속기 구축을 비롯해 수출용 신형연구로 개발 및 실증, 극한소재 실증연구 기반조성,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 국가로봇테스트필드 구축, 우주산업 클러스터 삼각체제 구축, 바이오파운드리 인프라 및 활용기반 구축이 대상이다.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 사업은 PM 지원 체계가 실제로 작동한 사례로 언급된다. 사업단은 기본교육과 심화교육, 맞춤형 교육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사업관리 체계를 단계적으로 정비했다.

사업 특성에 맞는 PM 인력을 채용하고 별도의 사업관리 조직을 구성했으며, 공정·일정·자원·리스크 관리를 위한 사업관리 도구를 실제 사업에 도입했다. 이와 함께 상·하반기에 걸친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사업 추진 단계별로 발생할 수 있는 쟁점들을 정리했다.

윤정식 대형연구시설전문위원회 위원장은 “처음 제도가 도입됐을 때는 또 하나의 규제가 생기는 ‘옥상옥’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며 “하지만 대형 연구시설은 한 번 방향을 잘못 잡으면 되돌리기 어려운 만큼, 규제라기보다 사업을 끝까지 끌고 가기 위한 관리와 컨설팅이라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형 연구사업을 추진하는 분들과 협력해 성공적인 구축을 돕는 것이 이 제도의 역할”이라며 “단계마다 점검하며 가는 것이 결과적으로 예산과 일정 낭비를 줄이는 길”이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imi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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