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디넷코리아]
인공지능(AI)은 이미 대부분 기업 현장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2025년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의 88%가 최소 한 개 이상의 업무에 AI를 정기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약 3분의 1은 AI 활용 범위를 본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업무 효율을 높여 인건비를 줄이고, 장기적으로 조직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목적 하에 AI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실제로 향후 10년 내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AI 도입이 오히려 비용 증가와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지는 사례도 빠르게 늘고 있다. 더컨버세이션 등 외신에 따르면, 남호주대 마케팅학 강사 게디미나스 립니카스(Gediminas Lipnickas)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도어맨의 오류(The Doorman Fallacy)’ 때문이라고 짚었다. 도어맨의 오류란 직원의 역할을 단순화해 AI나 자동화로 대체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잘못된 믿음을 뜻한다.

립니카스에 따르면 많은 기업이 AI를 도입하면서 인간 직원의 역할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겉으로 드러난 핵심 업무만 떼어내 ‘이 정도면 AI로 대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의 일이 결코 그 한 가지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도어맨의 오류라는 개념은 영국 광고업계 인사 로리 서덜랜드가 대중화했다. 호텔 도어맨을 예로 들면, 비용 절감을 중시하는 컨설턴트의 눈에 도어맨은 ‘문을 열어주고 가벼운 인사를 건네는 사람’ 정도로 보인다. 이 기능만 본다면 자동문과 출입 시스템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도어맨의 역할은 훨씬 복합적이다.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택시를 잡아주며 ▲수상한 행동을 사전에 차단하고 ▲단골 고객의 취향을 기억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런 ‘보이지 않는 가치’를 제거하는 순간, 호텔의 분위기와 고객 경험은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
AI 도입 실패도 같은 구조다. 인간의 일을 단일 기능으로 축소해 자동화하면, 그동안 자연스럽게 제공되던 섬세함·판단·맥락 이해가 함께 사라진다.

현실에서도 비슷한 사례는 적지 않다. AI 기반 고객 서비스를 공격적으로 도입했던 한 핀테크 기업은 상담 품질 저하로 불만이 폭증하자 결국 사람 상담원 채용을 재개했다. 자동화로 비용을 줄이려다, 오히려 서비스 회복을 위한 추가 비용을 떠안은 셈이다.
호주 커먼웰스은행 역시 올해 7월 고객 상담 인력을 AI 챗봇으로 대체하며 45명을 해고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통화량이 줄지 않았고, 남은 직원들의 초과 근무가 늘어났다. 은행은 결국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해고 직원들에게 복귀 옵션을 제시했다.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 타코벨도 드라이브스루 주문에 음성 AI를 도입했지만, 주문 오류와 느린 응답에 대한 불만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됐다. 현재 타코벨은 AI 활용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예외가 아니다. 조직 설계 플랫폼 오그뷰(Orgvue)의 보고서에 따르면, 직원을 AI로 대체한 기업의 55%가 “도입 시기가 너무 빨랐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립니카스는 기업들이 AI 도입 전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역할이 실제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지, 공식 문서에 적히지 않은 기여는 없는지 깊이 이해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는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단기 비용은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고객 경험과 장기 성과는 훼손될 수 있다”며 “지금까지의 증거는 분명하다. AI는 인간을 대체할 때보다, 인간의 판단과 결합될 때 가장 큰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외신은 “AI는 만능 해법이 아니다”며 “도어맨의 오류를 반복하는 기업이 늘어날수록,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사람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