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디넷코리아]
LG에너지솔루션이 최근 열흘 새 대형 공급계약 해지 공시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전기차 업황 악화 장기화가 국내 배터리 업계 ‘수주 안정성’까지 흔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완성차·상용차 밸류체인 전반에서 투자 속도 조절과 사업 재편이 이어지는 가운데 K배터리는 합작법인(JV) 구조를 뜯어고치고 보유 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현금·운영 효율’ 중심의 생존 전략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6일 미국 배터리팩 제조사 FBPS(프 그룹 계열)의 배터리 사업 철수 여파로, 2024년 4월 체결한 전기차 배터리 모듈 공급 계약을 상호 협의로 해지했다고 공시했다. 해지 금액은 공시 당일 환율 기준 약 3조 9천217억원으로, 전체 계약액(27억 9천500만달러) 중 이미 이행된 물량(1억 1000만 달러)을 제외한 잔여분이다.
이번 해지는 불과 열흘 전 공개된 포드 계약 종료에 이은 두 번째 대형 해지 공시다. 포드 건은 계약 해지 금액이 9조 6천30억원(2027~2032년 공급)으로 알려졌다.

증권가에서는 FBPS 건을 ‘상용차용 배터리팩 밸류체인(모듈→팩)’이 흔들리며 후발 사업자 퇴출이 계약 해지로 이어진 사례로 해석한다.
다만 해당 계약은 전용 라인 투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은 ‘표준화 모듈’ 공급 성격이어서, LG에너지솔루션은 수주잔고 감소 외 추가 비용·투자손실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전기차 침체 장기화로 수주 불확실성이 커지자 배터리 3사는 북미 합작 확대 대신 단독 운영·자산 정리로 급선회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5월 GM과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3공장을 사들인 데 이어, 최근에는 혼다와의 북미 합작회사(L-H 배터리) 자산을 혼다 미국 법인에 매각하기로 했다.
SK온도 포드와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 공장을 분리해 따로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켄터키 1·2공장은 포드가, 테네시 공장은 SK온이 각각 가져가며, SK온은 테네시 공장을 기반으로 고객 다변화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제품 포트폴리오 확장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삼성SDI도 전기차 배터리 대신 ESS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 스텔란티스 합작공장 일부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해 LFP 배터리 수요에 대응할 방침이다.
업계가 일시적 둔화로 보던 전기차 업황 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의 정책 변수까지 겹치며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종료했고, 유럽연합(EU)도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방침 폐기를 검토하고 있다.
결국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수요(차종·물량·시점)를 보수적으로 재산정하고, 그 과정에서 공급계약 재협상·취소, 합작법인 구조 변경, 자산 매각 같은 조치가 연쇄적으로 나타나는 흐름을 보인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LG에너지솔루션과 포드·FBPS의 계약 해지는 전기차 후발주자의 경쟁력 열위가 공급계약 해지로 이어지는 사례 확대를 시사한다”며 “향후 전기차 후발주자의 공급 계약 해지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