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상이 증명한 ‘인간 예술의 존엄’…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달은 언제나 절반만 보여준다. 그리고 그 뒤편에서, 우리는 인간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다.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은 우주비행사 마이클 콜린스의 이야기로 출발하지만, 결국엔 ‘인간이 자기 존재를 어떻게 응시하는가’를 묻는 실존적 드라마다.

1인극이라는 형식은 그의 고독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극대화하며, 어둠 속에서 천천히 빛을 길어 올리는 인간의 내면 구조를 정교하게 드러낸다.

◆무대는 비어 있으나, 그 빈 곳에서 우주가 태어난다
달 표면을 연상시키는 암석 형태의 조형물 하나. 이 단 한 덩어리가 공연 전체의 정서적 밀도를 지탱한다.

이는 단순한 미니멀리즘을 넘어선 ‘비워낸 미학’이다. 삭제된 것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 많은 감정이 발화되기 때문이다.

미술관 설치작업처럼, 그 비어 있는 공간 자체가 감정의 지형을 이룬다.

조명은 배우의 얼굴을 조각하듯 윤곽을 깎아내고, 음향은 진공 상태의 공간감을 만들어 ‘고독의 압력’을 시각화한다.

여기에 무대 전면 LED 영상이 결합해 밤하늘, 우주, 사령선 내부까지 확장된다. 이 장치는 단순한 시각 효과가 아니라, 콜린스의 내면을 외부 공간처럼 ‘실재화’하는 공간 조형 기술이다.

무대는 비어 있으나 비어 있지 않은, 역설적 우주가 된다.

◆유준상은 배우가 아니라 하나의 천체다
17년 만에 소극장 무대에 선 유준상은, 배우가 아니라 하나의 천체처럼 움직인다.

56세의 몸에서 이런 속도와 집중력이 나온다는 사실은, 그의 예술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힘’임을 증명한다.
90분 동안 그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중력을 재현한다.

목소리는 시간의 결을 만들고, 움직임은 무대의 축을 재배치하며, 노래의 호흡은 감정의 고도를 조정한다.

그는 네 명의 인물이 아니라 네 개의 자아가 한 인간 안에서 어떻게 진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관객과 가까운 소극장은 배우에게 잔인하다.
작은 숨, 작은 떨림, 작은 흔들림까지 모두 드러난다.

그러나 유준상은 그 정직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무대로 끌어올린다.

인간의 취약성, 고독, 희망. 그의 몸은 그 모든 감정의 조형물이다.

그의 공연은 ‘연기’라기보다 몸으로 빚어낸 조각적 사건에 가깝다.

◆달에 가지 못한 남자, 그러나 가장 멀리 도달한 인간
콜린스는 달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한 비행사로 기록되지만 이 뮤지컬은 그 결핍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재해석한다.

달의 뒤편에서 지구를 바라볼 수 있었던 단 한 사람. 딛지 못한 표면 대신,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어둠의 풍경’을 본 인간이기도 하다.

극 후반, 조명이 암영처럼 객석을 감싸고 음향이 진공의 떨림처럼 얇게 변하면서 콜린스가 느낀 절대적 고독이 관객에게 전이된다.

그리고 지구의 이미지가 등장하는 순간, 그는 깨닫는다.

“가장 아름다운 별은, 달 뒤편에서만 보였다.”

이 대사는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외로운 존재들에게 건네는 위로다.

보이지 않는 자리, 환호가 닿지 않는 역할. 그러나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권의 시점. 콜린스는 결핍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도달에 이른 인간이었다.

◆90분간 무대를 장악한 투혼의 미학
1인극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존재력의 문제다.

네 개의 캐릭터, 16곡, 손 닿을 듯 가까운 관객. 숨을 숨길 틈도, 템포를 늦출 공간도 없다.

배우는 존재하든지, 붕괴하든지 둘 중 하나다.

유준상은 그 중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철저히 존재했고, 그 존재로 무대를 장악했다.

그가 “이 작품은 전 세계로 갈 수 있다”고 말한 건 허세가 아니라 구조적 확신이다.

보편적 서사, 미니멀한 구조, 배우 중심 설계, 언어 장벽이 거의 없는 설정. 브로드웨이가 사랑하는 공식이 정확히 이 공연의 토대다.

◆가장 고독한 남자는 결국 가장 멀리 빛난다
달의 뒤편은 어둠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다시 조명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 서사를 온몸으로 끌어올린 배우는 단지 훌륭한 연기를 한 것이 아니다. 무대 위에서 ‘인간 예술의 존엄’을 증명했다.

뮤지컬 ‘비하인드 더 문’은 배우라는 존재의 힘이 무엇인지, 또한 무대라는 공간이 얼마나 깊은 인간성의 은유가 될 수 있는지를 다시 가르치는 작품이다.

공연은 2026년 2월 8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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