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뉴시스] 연현철 기자 = “호스피스병동 의료진은 환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존엄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명절이라고 다르진 않아요. 들뜨지도 무겁지도 않은 차분한 일상을 만들어드려야 하니까요.”
추석 연휴기간에 접어든 지난 4일 충북대학교병원 본관 9층 호스피스 완화의료전문병동은 고요했다. 복도에서는 환자와 보호자 간의 대화 소리가 병실 밖으로 희미하게 들릴 뿐이다. 의료진들은 환자들의 건강상태가 적힌 차트와 요법 프로그램 일정을 묵묵히 확인했다. 이번 연휴에는 3명의 입원 환자가 호스피스 병동에 머문다.
이재우(43·가정의학과) 호스피스센터장이 본관 9층에 온 지도 8년이 넘었다. 의대생, 전공의 시절부터 호스피스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서울에서 2년간 전문 경험도 거쳤다. 그 과정에서 ‘의사’라는 정의와 가치관도 새로 쓰게 됐다.
“의사는 치료하는 사람이라고 많이들 인식하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사람은 아프고 낫는 과정도 겪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과 마주하게 되거든요. 그 시간을 함께 정리하는 일도 생명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거죠.”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명절은 절대 달갑지 않다. 사별의 순간이 혹여나 명절이 될까 걱정하는 마음에서다.
“명절이 다가올수록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뭔지 아세요? ‘명절에 돌아가실 수도 있느냐”는 거예요. 기대 여명에 대한 답을 하는 의료진의 마음도 많이 무거워지죠.”
환자에게 ‘검사’는 가장 잔인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엑스레이 같은 간단한 검사를 받고도 건강에 무리가 생겨 임종기로 넘어가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환자가 치료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 상태도 더 악화하는 경우도 많다.
작별한 환자를 떠올릴 때가 종종 있다. 모든 판단이 환자를 위한 선택이었는지 떠올리는 습관 탓이다. 경험이 부족해 환자, 보호자보다 우왕좌왕했던 과거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2017년 첫 환자부터 지난주 돌아가신 환자까지 다 생생히 기억나요.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듯이 의사가 선한 의도의 결정을 내렸을 때 그 결과도 긍정적일 수만은 없거든요. 어떤 게 환자를 위한 것인지 늘 고민하죠.”
호스피스 병동 곳곳에는 그림과 드림캐처 등 환자들이 만든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미술이나 원예 요법 프로그램이 있는 날에는 새로운 작품이 내걸린다. 장은영(51·여) 간호사는 병동 큐레이터를 자청한다.
장은영(51·여) 간호사는 주로 외과병동에서 근무해 오다 2021년 4월 호스피스 병동 근무를 발령받았다.
여태 완치돼 퇴원하는 환자들을 주로 봐왔다면 이곳에선 다른 의미의 퇴원 환자들을 보고 있는 셈이다. 오랜 경험을 지녔지만 임종 간호는 매 순간 어렵게 다가온다.
“입원 환자분들은 평균 20일 정도를 병상에서 지내고 가세요. 한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감정이 전이된다고 할까요. 슬픔을 통감하는 일이죠. 무뎌지는 것도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의료진들의 가장 큰 바람은 환자의 편안한 임종이다. 한 가지를 더 꼽자면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 개선이다.
호스피스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기 전에 가는 곳’이라는 오해에 쌓여있다. 환자의 아픔을 덜고 남은 가족들의 마음을 채우는 곳이 호스피스라는 인식 전환이 절실한 이유다.
“내 가족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공감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호스피스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져도 이해할 수 있는 이유죠. 다만 막연하게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만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환자의 여생에 높은 문턱이 있으면 안 되니까요.”
충북대병원 호스피스병동에는 모두 10명(의사 1명, 간호사 8명, 사회복지사 1명)이 근무하며 9병상을 지킨다. 가정형, 자문형 등의 형태로도 말기 환자들에게 완화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호스피스 대상자는 암, 후천성 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 등으로 말기 진단을 받은 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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