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현준 한재혁 기자 = “재판에 개입할 일반적 직무 권한이 없었을뿐더러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는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전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이 중대 범죄혐의로 법정에 선 지 1810일. 선고에만 4시간27분이 소요된 1심 재판 결과는 모두 무죄였다. 재판부는 기소된 모든 혐의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부장판사 이종민·임정택·민소영)는 26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법행정권자인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재판에 개입할 직무상 권한이 없었기에 이를 남용했다는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기존 법원의 판단을 고수했다.
직권남용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기 위해선 넓게 직권의 행사 및 남용이 있어야 하고 이로 인해 상대방이 의무 없는 일을 하는 등의 범죄 구성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같은 구성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의 위상 강화 및 이익 도모 ▲대내외적 비판세력 탄압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 및 집행 등도 무죄로 판단했다.
◆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 등을 상대로 상고법원 도입 및 해외 법관 파견 등 조직의 이익을 얻고자 재판 개입을 계획 및 실행한 것으로 의심했다.
특히 재판을 담당하는 주심 대법관에게 청구를 기각하는 의견을 전달해 판결을 번복하게 하고 재판 절차를 지연하게 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1심은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에 개입할 일반적 직무권한이 없었고, 이 같은 행위가 직권의 행사 및 남용이 아니며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권리행사방해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강제징용 사건 외교부 의견 반영 방안 검토’ 보고서 작성 지시 등 다른 혐의에 대해선 직권행사는 인정된다고 봤으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거나 공모를 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보고서 작성 지시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이나 정부정책을 비판한 판사들의 의견 표명을 억압하고 문책성 인사조치를 단행한 혐의를 받았다.
특히 2013~2017년 일명 ‘블랙리스트’로 일컬어지는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문건을 작성해 검토하거나 법원 내부 게시판에 비판글을 올린 이들을 중심으로 희망지에서 배제하는 등 문책성 인사를 했다는 혐의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같은 보고서 작성 지시에 대해 인사권자인 양 전 대법원장의 일반적 직무권한에는 포함되지만 직권의 행사 및 남용이 아니고,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소위 물의야기 법관으로 지목된 법관으로 하여금 부당한 인사조치로 전보된 각 법원에서 근무하게 한 혐의도 직권의 남용 및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봤다.
◆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 및 집행 관련
양 전 대법원장은 직권남용 혐의뿐 아니라 공보관실 운영비를 불법으로 편성해 격려금으로 사용한 국고 손실 혐의도 받았다. 특히 이 혐의는 법정형이 3년 이상으로 규정된 중한 혐의다.
하지만 법원은 국고손실죄와 관련해 회계담당관 예산의 적정 편성 및 신청, 집행임무가 인정되지 않고 양 전 대법원장과의 공모관계도 인정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같은 사실관계에 적용된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기획조정실장의 예산 적정 집행 임무가 인정되지 않을뿐더러 재산상 이익 취득 및 불법이득의사도 없었고 공모했다는 혐의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아울러 공보관실을 운영할 것처럼 정부 예산안을 편성 받았단 혐의에 대해선 위계로 인해 예산편성이 되지 않았고, 공모관계도 인정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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